이집트·터키·예멘·튀니지 … 종교국가 꿈 가물가물

 

16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한 이집트 과도정부 내각에는 이슬람주의자가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군부가 임명한 아들리 만수르 임시 대통령의 내각에는 자유주의자 하젬 엘베블라위 총리를 비롯해 세속주의자들이 대거 포진했다.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한 군부 최고 실력자 압둘 파타 알시시 국방장관은 제1부총리를 겸임한다. 35명의 각료 중에는 여성과 콥트 기독교도 3명씩도 들어가 있다. 파워게임에서 밀려난 무르시와 그의 정치적 기반인 이슬람주의자 조직 무슬림형제단의 현주소다.

 이슬람정권이 1년 만에 몰락한 데는 무슬림형제단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내외의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출발한 무르시 전 대통령은 집권 1년 동안 이집트의 이슬람국가화를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샤리아(이슬람법)에 기초한 헌법을 급조하고 이슬람권력을 공고화하려 했다. 그러면서 치솟는 실업률과 환율, 바닥을 드러낸 외환보유액 등 경제난과 심각한 전력·석유난에는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자 2년 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을 성공시킨 시민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군부가 개입할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과속이 부른 급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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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주의에 기반한 장기집권 독재자들을 쫓아낸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주의자들은 민주화 혁명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정치 공백의 틈을 타 풀뿌리 조직을 기반으로 선거를 통해 득세한 이슬람주의자들의 오랜 꿈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집트가 중동 지역의 정치지형을 일거에 뒤바꿔 놓았다. 이슬람주의자들이 다시 코너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의 득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 등 여러 아랍 국가는 세속주의를 대표하는 군부가 주도하는 이집트의 새 과도정부에 대규모 원조를 약속했다.

이집트 새 내각 이슬람주의자 1명도 없어

 특히 아랍의 봄 원조국가로 이집트에 민주혁명을 수출했던 튀니지의 집권 이슬람세력은 무르시와 비슷한 운명을 맞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여당인 엔나흐다의 정치국원 무함마드 오마르는 “어떤 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 1월 반정부시위대가 24년 장기 집권한 세속주의 독재자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을 쫓아낸 튀니지에서는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선거를 통해 이슬람정권이 들어섰다. 무슬림형제단의 한 분파인 엔나흐다는 42%의 득표율로 제1당이 됐다. 하지만 실업률과 인플레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어 국민 불만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이슬람 무장집단이 세속주의 야당 지도자 초크리 벨라이드를 암살한 뒤 정국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집트 사태는 튀니지 세속주의 행동주의자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무르시를 무너뜨렸던 ‘타마로드(반란)’ 운동이 튀니지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타마로드는 독립기념일인 25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무르시 취임 1년인 지난달 30일 이집트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나흘 만에 무르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정치분석가 유세프 우아슬라티는 “튀니지의 형제단도 비슷한 운명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그나마 튀니지의 사정은 이집트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2개의 세속주의 정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엔나흐다당은 새 헌법에 샤리아 요소를 반영하지 않을 방침이다. 알리 라레예드 총리는 “우리는 합의와 파트너십을 추구하고 있다”며 “이집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튀니지에서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집트·튀니지와 같이 아랍의 봄을 겪은 리비아와 예멘에서도 독재자가 물러난 자리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주요 세력으로 참여하고 있다. 워낙 정파·종파·부족 간 분열이 심해 절대 다수의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들도 이집트 사태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반대로 “종교와 정치를 연계한 이슬람주의자의 몰락은 사필귀정”이라 몰아붙이며 지하드 반군에 역공을 퍼붓고 있다.

튀니지, 의회 해산 요구 대규모 시위 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무장정파 하마스는 밀월관계였던 이집트 무르시 정권의 붕괴로 든든한 동맹을 잃었다. 무슬림형제단의 분파인 하마스는 무르시 정권 기간 이집트 접경지역의 느슨해진 치안을 활용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무력화를 기대해왔다. 든든한 방패가 사라지면서 무바라크 시대와 같은 이집트-이스라엘 관계가 복원되면 당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슬람정권이 1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터키에서는 이집트 사태에 앞서 세속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정부시위 사태가 벌어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를 강경 진압해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세속주의의 대반격 불씨는 언제라도 다시 터질 수 있다. 국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오스만제국 영토에 현대 국가를 세운 이후 터키에서는 세속주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의 집권 정의개발당도 이슬람국가 건설을 포기하고 샤리아가 아닌 세속주의 헌법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경제성장으로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에르도안 총리가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 허용, 주류 판매 제한 등 이슬람주의 색채가 강한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경우 세속주의자들의 잠재적 불만을 건드려 정면충돌이 재연될 수도 있다. 터키에서는 세속주의 수호자를 자청하고 있는 군부가 1960~97년 네 차례나 쿠데타를 일으켰다.

터키도 반이슬람 불씨 남아 ‘아슬아슬’

 민주적으로 얻은 권력을 하루아침에 찬탈당한 이슬람주의자들 내에선 민주주의와 선거를 거부하는 강경세력이 득세할 조짐이다. 80년대 폭력 사용을 포기하고 제도권 참여를 통한 온건노선으로 돌아섰던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이 다시 지하로 들어가 급진투쟁을 벌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무르시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에삼 엘하다드는 “민주주의는 무슬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전파될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형제단보다 더 강경한 살라피스트 알누르당도 기존 정치권에서 이탈해 극단주의자들과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중동에서의 세속주의자와 강경 이슬람주의자의 대결구도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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