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와 같이 유적지만 있을 뿐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없는 곳이 밀레투스, 프리에네, 디디마이다. 이곳들을 연결하는 대중교통 편도 없지만, 여행자들은 다행히도 쇠케를 거점으로 하여 유적지들을 개별로 방문할 수 있다. 숙소나 식당, 안내소도 없고 대중교통까지 매우 불편한 곳에 있는 유적지들이라면 방문할 필요가 있을까? 도대체 어떤 유적지일까? 이곳은 고대 이오니아 지역으로, 현재 터키 에게 해(아시아 지역을 이루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서부 해안 지방)의 중부 지방이다. 이곳으로 가는 것은 기원 전 10세기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곧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국가 이오니아 동맹으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현재 싱가포르, 모나코, 바티칸 시국과 마찬가지로, 도시 그 자체가 한 국가로서 폴리스라고 불린다. 폴리스가 산과 강 및 바다에 따른 자연적 지리적 구분과 종교적 종족적 구분에 따라서 형성된 도시 형태의 국가이듯이 식민도시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식민도시국가 이오니아 동맹은 이 지역에 건설된 12개의 도시가 국가연맹 체제의 관계를 형성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식민도시이므로 그 세 유적지들은 폴리스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하여 재생된 도시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계획 도시이다. 폴리스의 기본 구조는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그와 인접해 있는 광장 아고라로 되어 있는 성채로 구성돼 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신전의 중심은 아폴론 신전이며, 아고라 광장은 공공활동의 중심지로서 사교의 장이면서 시장이기도 했다.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가 세 유적지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세 유적지, 맹주 밀레투스, 그 신전 도시 디디마, 동맹의 상징으로 건설된 프리에네는 그 역할에 맞게 폴리스의 문화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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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동맹 12 도시국가의 맹주 밀레투스 유적지.>

 

밀레투스는 쇠케에서 미니 버스 돌무쉬로 약 50분 내외의 거리에 있다. 이곳에는 아테네 신전과 같이 있는 아고라, 의회당 및 회의장과 그 근처에 있는 남북 아고라, 로마 시대 영웅들의 사당 헤룬과 그 아래에 있는 원형극장,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부인 파우스티나의 이름으로 지어진 동명의 욕장 등이 있다.

디다마는 밀레투스에서 쇠케로 되돌아 가는 중간에 있다. 이곳은 맹주 밀레투스가 세운 아폴론 신전의 도시로 디디마이온이라 불리기도 한다. 디디마이온은 소아시아 최대의 신전으로서 에페소 아르테미스 신전의 건축가 파이오니오스와 다포니스가 건립한 것이다. 디다마이온은, 폴리스의 중심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과 달리, 쌍둥이 남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동시에 모시고 있다. 이곳 신전도 역시 신탁이 행해졌던 곳으로서 당시 에게 해를 둘러 싼 도시국가들 간의 전쟁, 스파르타와의 전쟁,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중심으로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인 내용에 관한 것일 것이다. 고대 신전이 사람이 살지 않고 일년에 한 번 제사만을 지내는 장소이듯이, 이곳에는 이제 폐허가 된 신전만 남아 있다.

프리에네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신탁을 받는 신전의 도시 디디마의 반대 방향으로 한 시간 넘게 가면 나온다. 이곳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받드는 판이오니온을 건설하기 위하여 지어진 인위적인 계획 도시이다. 포세이돈이 바다의 지배자이듯이, 판이오니언에서는 에게 해를 중심으로 바다로 나아가고자 판이오니아, 곧 전 이오니아인들의 축제를 벌리는 곳이다. 판이오니아를 통하여 이오니아 동맹은 소속 도시들의 국력을 결집하고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고자 한 것일 것이다.

신탁과 축제, 신의 뜻과 인간의 일을 놀이를 통하여 결집시키는 것은 에게 해를 둘러싼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이오니아 식민도시국가들의 처절한 몸부림인지 모른다. 그 몸부림이 지나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의 불씨를 제공하여 현재 동양과 서양을 구별하는 지리적 분기점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패전으로 끝나자, 이오니아 식민도시 국가들은 그리스 문화를 더욱 더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에서 가장 먼저 수용해야 하는 것은 정치, 곧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흔히 말하는 아테네 민주주의, 공화주의, 대의제도이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여자, 노예, 외국인을 제외한 성인 남자들의 직접적인 민주주의라면, 공화주의가 개인의 독립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정치활동에 참여해야만 누릴 수 있는 공민의 자유라면, 대의제가 모든 국민들이 아니라 성인 남성만 참여하여 선출한 대표자들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아니 '민주주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로버트 달은 '개인의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정치참여가 자유로운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에 가까이 있긴 하지만 민주주의라고 확언을 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오직 그리스 시민에게만 가능한 제한적 민주주의는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할 것이라는 비관을 벗어날 수 없다. 성인 남성이라는 그리스 시민의 자격은, 더구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는 휴전 중인 분단국가에서 '병역 미필,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전관 예우, 논문 표절' 등과 동의어나 유사어가 되어버렸다.

근대민주의가 시민계급의 투쟁에 의해서 어떻게 쟁취되었는지,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시인 김수영이 '푸른 하늘을'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이해할 것 같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전문)

# 기독교-이슬람을 선악으로…영화 '300'의 편파적 이분법

 

흔히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을 동서양문명 간에 일어난 최초의 충돌이라고 말한다. 동서양 2500년 전쟁의 역사를 다룬 '전쟁하는 세상'(추미란 역)에서 안토니 파그덴 교수도 페르시아 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아직까지 멈추지 않는 동서양문명의 충돌을 '민주적인 원리 대 독재적인 원리, 세속주의 대 신정주의, 기독교 대 이슬람의 대립'에서 찾는다. 동서양문명 간의 이러한 구별을, '서구의 문화 패권주의자들에 의해 평화와 정의와 동정이란 교리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모략당한 수많은 무슬림'에 대한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비롯된 새로운 형태의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한다. 그 인종 차별을 영화 '300'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영화 '300'의 내용은 BC 480 년, 아테네로 가는 길목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일어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간의 전투이다. 3차에 걸쳐 일어난 페르시아 전쟁의 역사는 서양에서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그리스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철저히 그리스의 관점으로 다루어진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톰 홀랜드의 '페르시아 전쟁'에서도 서구 중심주의로 다루어진다. 그 가운데 프랭크 밀러의 동명의 만화를 바탕으로 2차 전쟁을 다룬 영화 '300'도,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선과 악의 대립으로, 심지어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를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로 그리고 있다. 이 선과 악의 이분법은 현재에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본 축이 되어 있다. 현대 예술이 허구(픽선)와 사실(팩트)을 결합한 팩선이라고 하지만, 영화 관객들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 온다'는 포스터의 선전 속으로 끌고 간다. 그 선전으로 관객들을 그리스와 페르시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물들이고 있다. 과연 그런가?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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