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성지 순례자와 함께 가는 초기 기독교 사적지이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7, 6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곳은 주변 국가들 예컨대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의 흥망성쇠에 따라 식민지화된 도시이다. 에페소로의 여행은, 그 내부에 있는 큰 길 양옆에 자리한 유적들을 둘러 보는 것이 거의 전부다.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그러나 유적들로의 역사 여행은 기원 전 1세기와 후 1세기에 걸친 200년 간의 여행이면서 지금부터 200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멀고 먼 여정이다. 그 여정의 중심에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트스 시기(BC 43~AD 18), 소아시아 속주의 수도로 지정되어 전성기를 맞이한 항구도시 에페소가 있다.

식민지 항구 도시로서의 전성기는, 마치 부산이 일본을 통해 제국 문화가 유입되는 관문의 역사를 가졌듯이, 로마 제국의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번창했던 시기이다. 로마 제국의 유적들은 건축물로 가득 차 있다. 그 건축물은 식민지 지배국가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권위는 신화에서 시작된다. 신화는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신이나 초인들, 영웅들의 특정한 사건과 행동 및 조건들을 설명한다. 이 시기 지배세력들, 황제 및 귀족들은 신화를 통치의 근본 원리로 삼아 현세 인간의 행동을 규제한다.

당시 황제들은 '아르테미스 신전', '헤라클레스 문'과 같이 신화의 이름으로 건축하고 명명한다. 그 계승자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치는 신전을 지어서 동명의 이름으로 신화화한다. 귀족들은 '하드리아누스 신전' 부근 고급 주택 '테라스 하우스'를 지어서 살아간다. 사후 기념물을 지어서 신전으로 명명하지 못하자, 귀족들은 그 이름을 빌려서 '셀수스 도서관', '멤니우스(로마 공화국 시대의 정치가 술라의 손자) 기념 묘'로 명명하면서 건축물의 벽면에 신화적 인물들을 부조하거나 석상으로 만들어 비치하기도 한다. 때로는 귀족들은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조각한 유곽 '러브 하우스'를, 농업사회의 경제적 원천인 물을 관리하는 '물의 궁전', '폴리오 샘', '트리아누스 샘'을 지어서 권력을 유지한다. 통치세력들의 결정을 받아서 행정실무와 종교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제들, 곧 '쿠레티'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사제들과 함께 시 청사 중앙 광장에서 꺼지지 않는 성화를 보존한다. 시민들은 통치세력들이 지워 놓은 '대극장'과 소극장 '오데온'에서 경기와 공연을 즐기기도 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예들은 시민들의 삶에서 배제된다. 경제적 부를 지닌 노예들도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에서 보듯 아우구스트스 황제와 그의 가족들에게 바쳐진다.

 

20130228_22024201012i3.jpg

 

<셀수스 도서관>

 

 

로마 문화의 유적에서 여행자들은 노예에서 황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그 삶은 신화를 중심으로 서열화되어 있다. 질서를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의 갈등을 여행자들은 로마 문화의 유적을 지나서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다가 건물의 잔해에서 만난다.

여행자들은 44년경 기독교 박해를 피해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로 온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낸 '성모 마리아의 집'을 만나고, '성 요한 교회'(에페소 교회), '잠자는 7인의 동굴'을 만난다. 초기 기독교 사적을 로마 유적지 부근에서 만난다는 것은 경이롭다. 그 경이로움은 이곳의 1세기로 되돌아가게 한다.

1세기 무렵은, 기독교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생하여 지중해를 거쳐 로마 제국으로 전파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 이곳에서는 초기 기독교(기원후 30년경 예수의 승천 이후부터 기원후 313년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의해 국교로 공인되기까지의 기독교)의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전도와 사목을 한다. 그는, 대략 48년에서 52년 사이 2차 전도여행, 52년에서 57년 사이 3차 전도여행 중에 에페소를 들른다. 도시 선교자이면서 로마시민권자인 그에게 소아시아의 수도 에페소는 선교의 중심지가 된다.

당시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아르테미스 신전만 있을 정도로 이곳의 주신은 여신 아르테미스였다. 그의 전도는 달, 사냥, 다산 등을 상징하는 여신을 중심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기존 질서를 옹호하려는 세력들과 이것을 전복하려는 세력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정치적이다. 비평가 테리 이글턴도 예수를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연대한 죄로 고문 받고 처형당한 정치범이며, 로마는 정치범만을 십자가에서 처형했다.'(강주헌 역)고 해석한다.

신화와 종교는 정치의 영역이다. 영화 '분열'(제 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터키영화특별전)은 이슬람교도 남편과 가톨릭 신자 부인 사이 자녀의 종교 선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교도 간 사랑의 '분열'은 자녀를 가톨릭 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시작되어 이혼으로, 양육권 소송으로 이어진다. 소송의 제기자가 외국인 부인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에서 재판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이교도 간의 사랑, 결혼, 이혼, 자녀 양육 등 모든 사안들이 가부장적 민족주의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준으로 하여 판결된다.

종교와 정치가 서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가장 맹렬하게 되살아난 것도, 이에 맞추어서 이슬람 근본주의도 되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고, 살인을 하고 온갖 악덕을 자행한다. 악덕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다. 인간의 길을 가르쳐 준 성지순례를 언제 할 수 있을까?


# 폭염속 물 한잔, 피보다 진했다

에페소 유적지로 가려고 미니버스를 기다리다가 들어간 식당의 주방장.

에페소로 가는 길은 불편하다. 에페소는 근교 여행 거점의 도시 여행 쿠샤다스나 셀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돌무쉬(미니 버스)가 여름에만 다닐 뿐, 관광시즌이 지나면 대중교통이 끊긴다. 여름 시즌이 되면 에페소 유적지는 사람들에 떠밀려 다닐 만큼 관광객과 순례자들로 북적댄다.

유적지 안에는 나무 그늘이나 쉴 만한 매점이 없어 여행자들은 폭염 속에서 햇볕에 달아 오른 돌길을 걸어 다녀야 한다. 쉴 곳은 기껏해야 폐허가 된 건축물의 그림자뿐이다. 서너 시간을 인파에 밀려서 폭염 속을 걸어 다니다보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다. 남문이나 북문에 도착하여 물을 찾으면 그 값은 폭염보다 더 달구어져 올라 있다. 2000년을 거슬러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할 뿐이다.

 


 

관광객과 순례자들로 북적이는 에페소 유적지.

도시에 물을 공급하고 관리하던 '물의 궁전'과 '폴리오 샘'이 기원 전 80년에 세워졌거나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바친 동명의 샘이 지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물을 3층으로 된 목욕탕 '스콜라스티카'에서, 당시 매춘업소인 '러브 하우스'에 들어가기 전 손님들이 사용했다는 기록은 전혀 거짓이 아닐 것 같다. 유적지로 가려고 돌무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물통에 가득 물을 채워서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 행운은, 우연히 식사를 하려고 들어 선 식당에서 주방장으로부터 왔다. 주방장은 칸카르데스(혈맹)의 나라 한국인을 도우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을 하면서 칸카르데스를 외쳤다. 이제 우리는 피가 아니라 물을 나눈 관계로 들린다. 그렇지, 폭염 속에서는 물이 피보다 진할 것이다.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신문에서 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84 세속주의의 역습 … 중동 덮치던 이슬람 물결 급제동 file 정근태 2013.07.19 4023 0
183 말레이시아, "이슬람 개종은 쉽게 타 종교는 어렵게" 법 정근태 2013.07.18 3628 0
182 한국이슬람교, '할랄인증' 발급기관 됐다 정근태 2013.07.12 3888 0
181 농심 '할랄 辛라면' 이슬람 공략 성공 file 정근태 2013.07.09 5612 0
180 시민혁명 + 쿠데타 … 아랍의 봄 다시 표류 file 정근태 2013.07.05 4437 0
179 이슬람·세속주의 충돌… 군부 개입이 관건 정근태 2013.07.02 3625 0
178 <16> 마지막 여정, 롬복과 길리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6.11 4854 0
177 <15>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로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6.06 7112 0
176 터키 격렬시위 뿌리는.. '세속주의 vs 이슬람주의' 충돌 file 정근태 2013.06.04 6692 0
175 <14> 페낭에서 과거로 느리게 걷다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5.30 5230 0
174 <13> 말레이시아의 첫 도시 멜라카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5.26 5704 0
173 <12> 터키 여정, 신화 속의 미래를 헤매다.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5.22 5209 0
172 <11>주말르크즉 마을 고양이를 보며 모순의 공존을 생각하다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5.20 4573 0
171 <10> 부르사, 신의 축복이 이교도에게도 널리 베풀어지길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 file 정근태 2013.05.12 4304 0
170 <9> 쇠케, 도시국가에서 제한적 민주주의를 보다.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5.01 4931 0
» <8>터키 에페소, 성지순례를 하면서 인간의 길을 물어 보다.-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4.29 5080 0
168 사우디, 주말 '목·금→금·토' 변경 추진 정근태 2013.04.26 4722 0
167 <7>터키 쿠샤다스, 분쟁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4.18 6996 0
166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자전거 탑승이 허용되다 정근태 2013.04.16 5399 0
165 <6> 터키 파묵칼레, 자연의 축제속에서 사회적 통제에 묶이다. - 민병욱의 이슬람에게 공존을 묻다. file 정근태 2013.04.11 6070 0

SITE LO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