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명예는 없다”

15세 딸을 약혼자와 전화통화했다는 이유로 화형에 처하고(2013년 예멘), 부모 동의없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신혼부부를 공개처형하고(2014년 파키스탄), 친오빠에게 성폭행 당한 여동생을 ‘오빠를 유혹했다’는 이유로 살해하는(1994년 요르단) 일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른바 ‘명예살인(honor killing)이다.

‘명예살인’이란 중동과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관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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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36개 국가중 최악 여성인권국인 예멘에서 부르카로 온몸을 가린 여성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라지만 주로 정조를 잃거나 간통을 범한 여성을 상대로 자행돼 왔다. 생매장, 돌팔매질, 화형 등의 잔혹한 방법으로 시행된다. 유엔인구활동기금(UNPFA)에 따르면 매년 전세계에서 명예살인으로 희생된 여성은 5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코란과는 무관, 구태악습일뿐=명예살인이 주로 자행되는 곳은 요르단,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터키 등 아랍 이슬람 문화권이다.

명예살인이 이슬람 국가에 만연하기 때문에 이슬람 종교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슬람교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이슬람교 경전 코란에서는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명예살인은 경전이 아닌 악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파키스탄은 ‘카로카리(karokari)’는 이름으로 명예살인을 저지르는 가장 악명 높은 나라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신혼부부 피살 사건도 파키스탄 동부 펀잡주의 사트라 마을에서 신부의 부모를 포함한 가족 5명이 결혼을 허락할 것처럼 부부를 불러들여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들 신혼부부의 죽음을 아이들이 지켜보도록 강요했다”며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는 “명예살인으로 사망한 숫자가 지난해 869명으로 보고됐지만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생명보다 ‘가문의 영광’=이슬람 문화권에서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가부장적인 문화때문이다. 여성을 일종의 자산으로 취급하면서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킨 여성은 가차없이 처단한다.

여기에는 여성의 낮은 자의식도 한몫한다. 국제인권감시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여성들 스스로조차 죽음으로 가족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내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에 동조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같은 여성경시 풍조가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범죄학 연구소가 최근 요르단의 15세 남녀 청소년 8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3.4%가 “명예살인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캠브리지대 마누엘 아이스너 교수는 “교육수준이 높고 종교적이지 않은 응답자들 가운데에도 명예살인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며 “규범을 깨뜨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관습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경미한 처벌, 명예살인 근절 최대복병=국제사회가 명예살인에 분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성의 인권유린 말고도 처벌이 경미하다는데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형법상 명예살인을 일반 살인사건과 다르게 취급한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성에 대한 살해를 가족 내부 문제로 규정하면서 ‘고의적 살인’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파키스탄 법에서는 기소된 범죄자가 ‘피 묻은 돈(blood money)’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자의 친척에게 일종의 위자료를 지불하면 법적 처벌 없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FP는 “이같은 남성들 사이에서의 합의가 여성에 대한 살인을 눈감아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요르단은 형법 98조에서 “상대의 불법행위가 분노를 일으켜 살인을 저지를 경우 감형을 허락한다”고 규정한다. 또 예멘은 명예살인이 대부분 부족법에 적용돼 시골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제대로 신고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나 정치인들의 방관적인 자세도 걸림돌이다. 요르단에서는 1999년 명예살인을 없애기 위해 요르단 국가위원회가 설립되고 법개정 서명운동이 확산됐지만, 하원은 “명예는 남성들에게만 해당되며 여성과는 무관하다”는 이유로 법 개정에 반대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명예살인 금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보수파의 반대에 부딪혀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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