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라시대에 이슬람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찾아볼 수가 있다. 아랍 지역에서 신라로 무역을 하기 위해 왔을 뿐 아니라, 신라에서도 아랍 지역으로 갔던 내용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문헌 이외에도 경주에 있는 무인석상은 신라시대에 아랍과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시 외동면 괘릉리에는 원성왕(元聖王, 8C)으로 추정되는 괘릉이 있는데, 그 옆에 무인석상이 하나 서 있다. 보물1427로 지정되어 있는 이 무인석상은 신장이 약 2m 50cm쯤 되며, 곱슬 수염과 곱슬 머리의 늠름한 무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 그 머리에는 무슬림의 전통복장인 터번을 쓰고 있다. 이들은 무장을 하지 않았으며, 그 모습은 아시아 계통이라기보다는 중세 서역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안강의 흥덕왕(興德王, 9C)능에도 이와 비슷한 무인석상이 있는데 그 모습은 괘릉의 무인석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무인석상은 당시 중국 매우능묘에 서역 무인들의 모습을 호인용으로 만든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 왕릉의 위엄과 수호적인 역할의 기능을 하였다. 이를 토대로 신라 왕조 때 이미 서역인들의 존재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들이 신라의 왕조와 호전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대표적 향가이자 설화인 ‘처용설화(處容說話)’에 등장하는 처용의 일행은 신라 제 49대 헌강왕(憲康王) 5년(879) 3월에 개운포(開雲浦)에 나타났는데 이들의 용모는 아시아 사람들이 아니라 아랍 무슬림으로 묘사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처용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개운포에 등장하는 처용을 일관(日官)이 호전적으로 묘사함에 따라 헌강왕은 이들을 환영하고 서울에서 집과 벼슬을 주어 살게 하였다. 삼국사기에도 처용의 존재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술들로 보아서 처용은 개운포를 통해서 신라와 접촉했던 이방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이방에서 동해를 거쳐 신라에 접촉하였으며, 처용의 모습은 무성한 눈썹, 우그러진 귀, 붉은 모양, 우뚝 솟은 코, 밀어나온 턱, 숙어진 어깨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처용이 동양 사람이 아니라 아랍인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처용설화는 아랍 사회가 신라와 접촉했다는 것을 유추하게 하는 것이다. 신라인도 아랍에 접촉했던 기록이 있다.
 
신라의 대덕고승인 혜초는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아랍에 갔던 인물이었다. 인도와 페르시아, 아랍, 중앙아시아에 관한 견문록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작성하였다. 혜초는 아랍국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가 방문할 당시 아랍 제국은 칼리프 시대(632-661) 후인 우마이야왕조(661-750)시대였다. 우마이야왕조 시대에는 수도를 메디나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옮겼는데, 혜초가 묘사한 소불림국(小佛臨國)은 당시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던 다마스커스를 의미한다. 혜초는 아랍 사람들이 입고 있는 복장을 묘사하면서 “헐렁한 적삼을 입고 한 장의 모직 천을 걸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이슬람의 전통복장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혜초는 대식국을 가리켜 불법을 알지 못하는 나라이며, 이슬람 신앙을 가졌기에 알라 외의 다른 누구에게도 절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신라와 아랍 간에 있었던 문명의 교역에 대한 증거로 이븐 쿠르다지바(Ibn Khurdadhibah)의 ‘제도로 및 제왕국지(845)’를 들 수 있다. 그는 신라의 지리적 위치를 밝히고 신라와의 무역의 목록들을 나열하고 있다. 비단, 검, 사향, 침향, 말안장, 초피, 도기, 범포, 육계 등은 신라가 수출한 물품들이었고, 아랍이 신라에게 수출한 물품은 유향과 안식향을 비롯한 아랍산 향료, 신라고분과 사찰에서 출토된 각종 유리기구, 일반서민들도 애용하던 구슬 같은 기호품, 단검이나 토용 등이었다. 신라 고분인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동 98호 남분 및 북분에서는 20점 가량의 유리기구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아랍계 상인들을 통해서 신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교역 물품을 통해서 아랍과 신라 사이에 문명의 접촉과 교류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고려시대와 이슬람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신라시대 때보다 아랍과의 교류가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고려 시대 때에는 원제국을 통하여 아랍문명이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처음으로 움마(Ummah, 이슬람공동체)가 부분적으로 형성되었다. 기록상 최초로 한반도에 진출한 무슬림은 고려 현종(顯宗) 15년인 1024년에 등장한다. 고려사 현종 15년의 기록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9월 을미일에 김인위(金因渭)를 상서 우복야 참지정사로 임명하였다가 이내 사직케 하였다. 갑인일에 흑수말갈의 아이고(阿里古)가 우리나라에 왔다. 9월 대식국의 열라자(悅羅慈) 등 1백 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서 고려사회 내에 무슬림 상인들이 무역을 주목적으로 일시에 백 명 이상의 인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절단의 형태로 방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들이 이미 고려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교역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고려와 아랍간의 교류는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항로를 통해 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랍 상인들이 대거 고려로 교역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송나라와 아랍과의 국제무역의 번성과 고려와 송간의 원활했던 교역관계를 기반으로 하는데, 당시 송대는 이슬람 세력 팽창의 시기로서 무슬림 상인그룹에 의한 국제무역의 번성기였다. 따라서 아랍은 송과의 무역뿐만 아니라 고려와도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물의 교류는 주로 공(公)무역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식 상인들이 고려에 거주하는 동안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는데, 그것은 조정에서 거행된 주요 국가행사에 외국 사절들과 함께 참석할 정도로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이들은 왕실과의 긴밀한 공(公)무역관계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고려 사회 안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성(姓) 중에도 고려시대 때 시작된 성이 있다. 이러한 성(姓)들 가운데에는 당시 무슬림들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 있다. 무슬림들 중에 일부는 고려에 귀화하였는데, 이를 통해 성(姓)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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