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쿠란, 다른 손에는 검.’ 이슬람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문구다. 이탈리아의 스콜라 철학의 대부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언급한 말로 알려져 있다. 아퀴나스의 활동 시점은 13세기 십자군이 이슬람 원정에서 패배를 당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반면 이슬람 세력은 유럽인들을 ‘무자비한 하얀 악마들’이라고 부르며 지하드(성전)로 맞섰다. 단순한 영토전쟁이 아닌 종교와 문명 간 갈등과 반목을 동반한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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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200여 년 동안 벌어진 십자군 원정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전쟁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는 수백만명이 넘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 기독교세계와 이슬람 세계 간 반감과 증오가 심화되고 축적된 것이다. 그 여파는 아직까지 일반인들의 뇌리에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은 평화적이고 상호호혜에 바탕을 둔 긍정적인 교류도 많이 했다. 우리는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갈등의 뿌리, 십자군 전쟁

서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무슬림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8차례에 걸쳐 원정을 감행했다.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은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했다. 이 때문에 원정대는 십자군으로 불렸다. 종교적 상징이 전쟁에 동원된 것이다. 이로 인해 아직도 십자군 전쟁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싸움이라는 종교적 해석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종교적 배경이 전쟁을 전적으로 좌우한 것은 아니었다. 봉건영주와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지배의 야망에서, 상인들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욕망에서, 또한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중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희망에서 저마다 원정에 가담했다. 호기심, 모험심, 약탈욕구 등의 동기가 신앙적 열정과 합쳐진 것이었다.

이슬람권도 십자군에 맞서 싸우며 기독교 유럽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현재까지도 그렇다. 미국 주도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과 점령을 바라보는 무슬림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을 떠올린다. 이슬람 과격세력에게는 더욱 이 반감을 이용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 등 과격 단체의 지도자들이 성명서마다 언급하는 것이 ‘십자군 세력’이다. 현재 이슬람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서양의 군대를 십자군과 동일시하고 있다.

중동 학계와 언론은 미국의 경제 및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3대 로비세력, 즉 에너지, 군수 그리고 이스라엘 로비세력이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과 점령의 배후라고 주장하고 있다. 십자군 원정의 경제적 배경과 비슷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사자왕과 살라딘

십자군 전쟁에서 등장한 전설적인 인물은 두 사람으로 압축될 수 있다. 유럽의 사자왕 리처드 1세(1157~1199)와 이슬람세계의 영웅 술탄 살라딘(살라훗딘, 1137~1193)이다. 영국의 왕 리처드는 1190년 프랑스의 필립 2세 및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제휴하여 제3회 십자군을 편성해 직접 출정했다. 1191년 리처드는 성지 예루살렘 근처에서 살라딘 군대를 격파하여 3년의 휴전을 맺음으로써 사자왕(獅子王)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용맹성에 대한 찬사다. 그러나 리처드는 동시에 잔혹성으로도 유명했다. 십자군 전쟁 기간 중 가장 치열한 전투였던 이스라엘 북부 아크레 공방전에서 승리한 리처드는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결정을 내린다. 기독교인 포로들의 석방이나 교환에 이용될 만한 소수의 귀족을 제외하고는 모든 포로의 목을 베라는 명령을 내린다. 부하들은 2700명의 포로들을 도시 밖으로 끌어내 참수해 버렸다.

반면 서방 학자들의 글에서도 살라딘은 리처드 1세와는 대조되는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이라크 북부에서 태어난 쿠르드족 출신인 그는 삼촌 시르쿠가 지휘하는 이집트 원정대에 참여해 유럽의 십자군 원정대인 프랑크족을 몰아낸다. 그 공적으로 이집트 시아파 파티마왕조의 대재상에 오른 그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집트의 지배자가 된다. 북아프리카에서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 지역에 이르는 이슬람 제국을 형성한다.

이슬람 제국의 가장 큰 위협은 단연 십자군이었다. 평화조약 중 예루살렘 인근을 지나는 대상과 순례객을 공격하는 예루살렘 왕국의 기독교 군대에 대해 그는 1187년 성전을 선포한다. 기독교 군과 이슬람 군의 최대 격전은 현재 이스라엘 북부 히틴에서 벌어졌다.

이슬람 대군은 살라딘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전투에 임해 기독교 군을 격파한다. 3만여 명의 병사가 사망한 피비린내 나는 전투였다. 예루살렘 왕국의 왕은 결국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서방의 학자들도 살라딘을 영웅이자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 부분은 여기서부터 등장한다. 관용과 용서의 정신이다. 전투가 끝난 뒤 포로로 잡힌 예루살렘 왕에게 그는 직접 물을 따라주며 융숭한 대접을 베풀었다. 그리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거점을 둔 기독교 왕국으로 그를 보내주었다. 이후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제1차 십자군 전쟁 이후 90년 만에 기독교의 수중에 있던 성도를 되찾은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그의 첫 명령은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정복’이었다. 포로를 처형하는 일이 없었다. 기독교인 부상자들을 정성껏 돌봤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살라딘의 부하가 되기를 자청하기도 했다.

남편을 찾아달라는 여인과 함께 울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유럽의 일부 학자들이 그를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정복자’라는 칭송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루살렘 회복을 외치며 출정한 리처드 1세와의 전투에서도 유명한 아량을 잊지 않았다. 전투 중에 리처드가 낙마했을 때 살라딘은 새 말을 보내주었다. 리처드가 고열에 시달렸을 때는 눈을 선물로 보냈다. 살라딘의 이름이 먼 유럽에까지 전해지게 된 중요한 일화다.

문명의 충돌?

1993년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히트를 기록한 책이다. 헌팅턴은 소련연방이 해체된 이후 시대의 문명 간 충돌이 국제정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문명의 정체성, 특히 종교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중에서도 “피의 국경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이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방과 이슬람문명의 관계는 과거부터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항상 군사적 충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궁극적으로 소련이라는 위협이 없어진 단극시대에서 미국은 이슬람권에 대한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실제로 2001년 9·11테러 사태가 발생하면서 그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 MK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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