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지금 금식(禁食)중

2008.09.09 11:08

정근태 조회 수:4346 추천:36


라마단 맞아 무슬림들, 중앙성원 기도 행렬
평소보다 10배 많아… 한국인 신자도 보여
오순도순 이야기 꽃… '추석' 같은 분위기




지난 7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119안전센터가 있는 소방서길을 따라 이색적인 차림을 한 수십명이 꼬리를 물고 올라가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흰색 원피스 모양의 옷을 입은 사람, 머리에 푸른색 터번을 쓴 사람, 턱수염을 길게 기른 사람…. 아랍계 사람들의 차림이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한달간 계속되는 이슬람의 금식월(禁食月)인 '라마단' 기간 동안 예배를 올리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몰려든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이다. 한남동에 있는 한국 최초의 이슬람성원(聖院)인 '서울중앙성원'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이태원의 '라마단'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이태원 소방서길 일대의 풍경이 바뀌었다. 매일 저녁 중동·아랍계 외국인 200~600명이 도로를 가득 메워 이색적이다. 평소 중앙성원에서 예배를 보는 무슬림은 40~50명에 불과하지만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예배 인원이 10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소방서길 곳곳에서 "앗 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인사 소리를 듣기도 어렵지 않았다.


▲ 7일 오후 이슬람교의 금식월(月)인‘라마단’기간을 맞아 서울 한남동의 이슬람성원(聖院)을 찾은 신도 수백 명이 예배를 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 따르면 한국에 상주하는 내·외국인 무슬림 수는 12만~13만명 정도.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인 무슬림도 3만5000여명에 달한다. 이날 예배에는 50여명의 한국인 무슬림이 참석했다.

"호기심에서 이슬람 사원에 드나들다 신자가 됐다"는 안태환(15·중3)군은 "요즘 학교에서 친구들이 '왜 밥을 안 먹냐'고 물어보면 다이어트 중이라고 둘러댄다"고 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김동수(49)씨는 1998년 사업차 모로코에 갔다가 현지 여성과 결혼하면서 무슬림이 된 경우다.

이날 성원에는 각국 출신의 무슬림들이 모였다. 경기도 일산 근처 비닐봉투 공장에서 일하는 모로코인 시드 이스드람(30)씨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1시간 30분 넘게 걸려 예배를 보러 왔다고 했다. 이집트 출신 알리 아마드(31)씨는 서울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유학생이다. 파키스탄 출신 자인(38)씨는 이태원 옷가게 문을 닫고 왔다고 한다.

스카프나 히잡을 두른 여성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성원 앞 공터에서 공놀이를 하며 깔깔댔다.

예배당에 모인 무슬림들은 10분 가량 짧은 예배를 마치고, 바닥에 길게 비닐을 깔고는 이슬람식 닭고기 볶음밥을 나눠 먹었다. 라마단 한 달 동안 무슬림은 일출에서 일몰 사이에는 금식을 한다. 이날도 새벽 4시30분부터 14시간 이상 물조차 먹지 않다가 이곳에서 해가 진 뒤에야 식사를 했다. 라마단 금식은 신앙증언, 기도, 희사, 메카순례와 더불어 무슬림이 꼭 지켜야 하는 계율 가운데 하나이다. 알라(신)의 은총이 온 세상을 덮는 반면 사악한 기운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라마단 기간, 이태원의 무슬림 식당도 낮과 밤 풍경이 엇갈렸다. 서울중앙성원 근처 파키스탄 음식점 '스와트푸드'는 낮에는 거의 개점 휴업 상태이다가 오후 7시 이후 북적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터키 음식점 '살람'도 마찬가지였다. 이 가게 종업원은 "라마단 기간에는 해만 떨어지면 정신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

국내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한국인들이 이슬람을 테러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데 대해 불편해 했다.

모로코인 시드 이스드람씨는 "테러와 관련한 국제 뉴스가 나오면 경계하거나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집트인 아마드씨는 "한국인들은 '이슬람'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샤리크 사이드(42)씨는 "한국 사회도 다양한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알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인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은 이슬람식 식생활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게 힘들다고 했다. 무슬림인 성주영(25)씨는 "대학에 입학하고 MT를 가자는 친구들 제안은 모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며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자리에 어울릴 수가 없어서 친구들은 내가 체질상 술을 마시지 못하고 돼지고기엔 알레르기가 있는 줄 안다"고 말했다.

추석에도 금식을 하느냐는 질문에 김권영(49)씨는 "추석에도 금식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별한 사정으로 금식을 못할 경우는 라마단이 끝난 뒤 금식을 못 지킨 날만큼 개인적으로 금식하면 된다"고 했다.

이주화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사무총장은 "이슬람을 특별한 눈으로 보지 말고 무슬림도 한국 사회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넓은 시각에서 봐달라"고 당부했다.

김성모 기자 sungm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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