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고려시대와 이슬람

삼가(三歌) 장순룡(張舜龍)은 1274년 고려 충렬왕의 몽골비(妃)인 제국공주의 종관으로 고려에 왔는데 그는 투르크계 위그르 출신의 무슬림으로서 한국에 귀화한 최초의 무슬림이었다. 고려사 제 123권을 보면 장순룡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장순룡은 근본이 회회족이며 처음 이름은 삼가이다. 그의 부친 장경은 원나라 세조를 섬겨 필도적 벼슬을 했다. 장순룡은 제국 공주의 겁령구로 와서 낭장 벼슬을 받았고 여러 관직을 거쳐서 장군으로 승진되면서 이 성명을 고쳤다.

여기에서 사용된 삼가의 의미는 세 번째 형으로서 투르크계 위구르인을 지칭한다. 장순룡에 대한 이야기는 “덕수 장씨 가승보”에서도 등장한다. 장순룡은 본래 무슬림으로서 원나라의 관리였으나, 원나라의 공주의 시종관으로 고려에 오게 되었다. 그는 고려 사회에 정착하면서 귀화한 최초의 무슬림이었는데, 고려와 원 사이의 외교조정의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충렬왕과 원의 세조에게서 신임을 얻어서 두 나라 모두에게서 높은 관직을 받게 되었다. 장순룡의 후손들은 25대에 걸쳐서 고려와 조선조에 관료와 학자, 무관의 관직을 이어갔는데 지금은 경기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분포해 있다.

민보(閔甫)라는 인물도 고려 사회 안에 귀화한 무슬림이었는데, 그는 고려사 제31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민보는 충렬왕 1294년에 장군의 신분으로 원나라의 조공을 드리러 갔는데 1299년에는 대장군의 신분으로 원나라로 가게 되었고, 1301년과 1303년에는 대호군의 신분으로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 또한 1305년에 상호군의 신분으로 원나라에 가게 되는데 고려사에 나타난 민보는 고려 사회에서 무관을 담당하는 관료로서 원나라의 조공을 드리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민보는 무슬림 사람으로서 고려국으로 귀화함으로서 무관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원나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설손(偰遜)은 고려사 제 112권에 등장하는 귀화한 무슬림이다. 설손은 무슬림으로서 원나라의 황제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학자였는데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고려에 와서 귀화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왕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고려 사회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고려사 속에서 나타난 장순룡, 민보, 설손과 같은 인물들은 고려 사회 내에서 귀화했던 무슬림들이다. 이들은 조정의 지원을 받으며 고려 사회 내에서 대내외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관료였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무슬림 신앙이 얼마나 존속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고려 사회에 귀화해서 살았던 이들이 무슬림 신앙과 생활을 추구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슬람은 하나의 사회ㆍ경제적 세력으로 고려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개성과 그 주변에 거주했었는데 이는 고려 시대에 거주했던 무슬림들이 조정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 사회 내에서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들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고려의 조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3) 조선시대와 이슬람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고려시대에 이어서 이슬람과의 교류가 계속 되어졌다. 조선시대에는 무슬림들의 종교 행위가 보장되었으며, 이슬람의 과학기술과 공예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슬람과의 문명의 교류에 관련한 서술이 잘 나타나 있다.

조정에서는 회회인들을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으며, 조선 사회 내에서 가족을 이루고 살도록 하였다. 또한 무슬림 상인뿐 아니라 무슬림 종교 지도자를 거주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이슬람 종교의식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지도자가 거주하였을 정도로 이슬람은 조선시대에 정착될 수 있었다. 조정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회회 사문들의 생활을 지원을 함으로서, 이들의 복지와 생계를 도왔다. 회회 사문들의 존재는 조선시대 사회 안에 무슬림들이 움마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이고, 조정이 이슬람의 종교를 호의적으로 인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유한 이슬람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는 것이다.

세종이 즉위했던 원년에 회회인들은 공식적인 조하의 자리에서 불교의 승도와 함께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조선의 조정이 불교와 이슬람을 통솔하고 있으며, 이슬람은 이미 조정이 인정하는 하나의 공식적인 종교임을 알 수 있다. 회회인들이 임금을 찬양하는 송축 의식을 하였다는 것은 조정의 공식적인 행사와 의례에서 무슬림들을 포함시켰을 정도로 중요한 집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이 왕세자와 문관과 무관의 신하들과 함께 조정의 조례행사를 실시할 때에 귀화한 회회인들이 조하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도 회회인들이 귀화했었으며, 이들은 조정의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문물들과 기술들을 교류하는 수준으로서, 고려시대보다 더 활발한 이슬람과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특별히 이슬람력(Islamic calendar)은 조선의 역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칠정산내외편이 만들어지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또한 조선 세조 때에는 투르크-페르시아계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수출하는 도자기 안료인 회청이 수입되었다. 이로 인해 청자를 넣은 청화백자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청화백자의 등장은 도자기 공예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거주하였던 무슬림들은 주로 조정과 상류층 사회와의 교류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조정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였을 정도로 이들의 위치는 중요했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였으며 조정과 주로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슬람이 대중 속에 정착되지 못했고 결국 자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지배층 중심의 성격은 민중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급변하는 대내외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 News Powe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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