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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라 물의 궁전>

 

1만8000개가 넘는 섬으로 되어 있는 인도네시아 여행은 섬에서 섬으로 이어진다. 수마트라 섬에서 시작하여 자바 섬을 거치면 레서 순다 군도로 이어진다. 그 군도에는 발리 섬, 롬복 섬 그리고 길리 3섬이 있다. 발리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소문난 만큼 행정 관리들의 공공연한 뇌물 요구, 바가지 상혼, 턱없이 비싼 물가 그리고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로도 세계적이다. 그 옆에 있는 롬복은 발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착하디 착한 섬이다.

롬복은 발리와 그 태생부터 다르다. 19세기 초 발리인의 통치를 받기 이전까지 롬복은 마타람 이슬람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롬복 섬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이슬람 왕국의 영토였다. 그 주민들은 현재에도 대부분 말레이 계통 사사크족이며, 동부에 숨바와인들, 서부에 발리인들, 도시권에는 중국인들이 약간 살고 있다. 롬복 여행의 첫 출발지는, 발리 파당바이에서 페리로 건너 온 렘바르 항구다. 항구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따라가면 암쁘난에 이르고 곧 누사 텡가라 바랏 박물관을 만난다. 박물관은 롬복 섬과 숨바와 섬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면서 수공예품과 고 미술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 두 섬의 주민들은 대부분 사사크어를 사용하는 말레이계 이슬람이다.

박물관을 나오면 짝라느가라에 이른다. 이곳에는 발리 술탄의 궁전을 비롯한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발리 술탄의 휴양지로 세워진 마유라 물의 궁전이 있다. 궁전은 인공호수에 방갈로 모양의 수상 가옥을 지은 구조다. 또 린자니 화산의 분화구에 생긴 화산 호수 스라가 아낙을 그대로 본떠 만든 나르마다 별궁도 있다.

   
사데

술탄의 궁전들을 거쳐서 발리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 마타람 왕국의 주도 마타람에 이른다. 왕국은 사사크어, 사사크족, 사사크 문화의 나라이다. 베모(소도시에서 정규 버스 노선을 운행하는 미니 합승 버스)를 타고 마타람을 출발하여 쁘라가야에서 다시 갈아타면 람비딴과 셍꼴 마을에 이른다. 이들 마을은 사데라고 부르는 사사크족의 전통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큰 가옥이라고 할 만큼 집과 집 사이는 대문과 담장이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마을 전체에 있는 하나의 대문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대문에 들어서면 수백 년이 된 나무가 드리워져 외지인을 반긴다. 사사크인들은 그 나무에 예를 표하고 지나간다. 수목의 영혼에게 자신과 가족, 마을의 안녕을 기도하는 것이다. 마을이 하나의 집단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사크 문화의 초기 모습은 분명 정령신앙의 형태일 것이다. 수목의 정령이 혈연과 지연으로 묶여 있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준다는 믿음. 그 믿음은 발리 왕국이 지배하면서 강요한 힌두교를 거부하고 13세기에 유입된 이슬람과 결합하게 만든 것이다. 섬의 북부 지역에 사는 소수 사사크인들은 정령신앙과 힌두교, 이슬람교를 혼합한 '3개의 결과' 곧 웩뚜(결과) 뗄루(3)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 신앙을 모시는 곳은 1714년 섬에서 가장 신성한 지역에 세워진 링사르 사원인데, 서로 다른 종교의 사원들과 공존하고 있다. 곧 발리 힌두교의 가두 사원과 롬복 이슬람교의 크라말릭 사원이 그것이다.

   
바투 볼롱 사원

물론 섬에는 이슬람교 사원, 힌두교 사원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회도 공존한다. 그 가운데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곳은 힌두교 바투 볼롱 사원이다. 롬복 해협을 배경으로 한 절경에 세워진 사원은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더구나 그 때가 만월 기간이라면 여행자들은 힌두교의 축제로 생기를 되찾는다. 만월 기간 힌두교들은 행복한 삶을 소원하며 등불을 밝히고 화환과 과일을 바치면서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또 친지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한다. 여행자들도 특별한 선물로 과일들을 받기도 한다.

해변을 따라서 섬의 역사와 문화를 둘러 본 여행자들은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해양스포츠를 즐기기도 한다. 해변에서 출발하여 폭포 센당길레를 지나 떼떼바뚜 고원에서 섬 전체를 조망한 후 린자니 화산으로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다. 아니면 제일 큰 어촌 딴중 르아르를 방문하여 어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푸트리 센데라마타나 수공예 센터에서 공예품을 고르는 재미를 맛보는 것도 좋다.

   
길리 메노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여행은 길리 군도로 가는 것일 것이다. 길리 군도에서 서로 다른 종교들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 초기 이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길리 트라왕간, 길리 에어, 길리 메노의 세 섬으로 구성된 길리 군도는 '지구 상에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섬 베스트 3'(영국 BBC 방송), '세계 10대 최고의 여행지'(론리 플래닛) 등으로 칭송 받는다. 섬들은 둘러보는 데는 걸어서 2, 3시간이면 족하다. 작은 섬에서 여행자들은 푸른 하늘, 맑은 바다를 만난다. 섬 주민들은 언제나 여행자들에게 "그냥 섬에서 뭔가를 즐기세요, 즐기지 못하면 그냥 푹 쉬세요" 하는 눈길로 인사를 한다.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간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무언의 인사이다. 서로 공존한다는 것은 서로를 공경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아닐까? 여행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경과 존중을 통한 공존이라고 가르친다. 그 가르침이 먼저 나부터 실천해야 우리 사회도 공존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 현지의 낯선 친구들

   
인도네시아 대학교 휴학생 이쭝의 여동생들과 함께한 필자(왼쪽).

수마트라 섬에서 시작하여 자바 섬, 발리 섬, 롬복 섬을 거쳐서 길리 군도로 여행했을 때, 필자는 낯선 친구들의 도움으로 섬과 섬 사이를 건너거나 그 섬에서 여정을 즐겼다.

수마트라 섬에서 시작하여 자바 섬 자카르타에 도착하자 필자는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는 싸만디를 만났다. 그 만남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인도네시아 유학생 이반에게 인도네시아로 간다고 하자 그가 내게 싸만디를 소개해주었던 것이다. 자카르타 배낭 여행자 거리 작사 잘란에서 만난 싸만디에게 관광 명소가 아니라 전통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세투 바바칸을 소개했다. 이곳은 자카르타의 옛 이름 바타비아에서 유래한 베타위 문화, 자카르타 전통문화를 상설 공연하는 곳이다. 그 공연은 화려한 히잡을 쓴 여성들이 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노래하고 손뻑치는 베타위 공연이다.

자바, 발리, 롬복의 섬들을 거쳐서 길리 트라왕간으로 들어갔을 때 필자가 만난 낯선 친구는 이쭝이다. 그는 라인도네시아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휴학생이면서 롬복에 집을 두고 길리에 학비를 벌려고 들어와 있었다. 그는 길리 트라왕간에서 한국 배낭 여행자를 처음 만난다고 하면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의 소개로 길리 메노, 길리 에어를 둘러 보다가, 함께 롬복으로 들어 갔다. 롬복에서는 그는 안내자 겸 친구가 되어 그의 집에 머무르게 했다. 길리 군도와 롬복에서 필자는 그의 친구가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

여행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은 낯선 친구와의 만남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삶은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선물을 나누기 위해 다시 배낭을 메고 떠날 것이다.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끝-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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