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김

2016.07.28 08:19

정근태 조회 수:186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 (3:7-8)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력서에 쓸 만한 자신있는 항목들을 열거하고 나서,

이 모든 것들을 해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쓰다가 낡은 것,

또는 유행이 지나간 것,

또 고장이 나서 쓸 수 없게 된 것,

가지고 있으면 손해를 보는 것,

이런 것들은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다 해로 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전에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다 해로 여김은 그렇게 할 만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목적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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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전에 자신이 귀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을 망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육체를 신뢰하게 되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게 됩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종교를 통해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상석에 올라가는 일에만 전력했습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고 영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게 됐고 사회적 종교적 지위가 위태로워지자 서슴없이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바울이 그전에 매우 가치 있게 생각했던 의는 이제 그의 보기에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한 자기의 힘을 의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가 자기에게 무엇을 주게 될는지를 알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재물을 모으려고 하고,

높은 권세의 자리와 명예, 지식, 인기 등 그것을 잡으려고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삶의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인생이라는 실망과 허무만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변질된 인생만이 남게 됩니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인 신앙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나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벌레가 고치를 짓고 이전의 모습을 잃어버려야 나비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자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버려야 비로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아가 포기되지 못했을 때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삶의 기쁨과 활력이 없고 인간의 억지만이 있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 아니요, 신념의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올라가겠다고 모아들였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구원의 길로 가게 만드는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 필요한 것을 잊게 만드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천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던 예수가 그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변하고,

그가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가장 추한 것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쓰시기 위해서 이렇게 완벽하게 변화시키셨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너무나도 멋진 고백이요, 변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고상하고 값진 것임을 우리 함께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고백합시다.

세상에서 얻어진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가 우리의 진정한 보화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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