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앎

2016.11.04 21:45

정근태 조회 수:2229

 

 

내가 그리스도와 ...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 (3:10)

 

고통이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고,

고난을 통과하지 않은 영광은 참된 영광일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난을 맛보지 않고 영광을 얻기를 바라고,

창조하는 아픔을 겪지 않고 창조의 기쁨을 맛보려 합니다.

해산의 고통이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품에 안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짜를 만듭니다.

이러한 풍토는 신앙생활에까지 침투되어 아주 쉽게 편안하게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들로 교회는 만원을 이룹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속했으니까 이제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교회에 다니지요.

     

독일의 신학자인 본 회퍼는 이러한 교회의 풍토를 날카롭게 비판하였습니다.

교회는 은혜를 싸구려로 팔리는 상품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또는 무진장한 식료품 창고에서 물품을 내오듯이 생각 없이 교회에서 털어 내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대가는 이미 지불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공짜라고 말하면서 무엇이나 거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들이 거저 주어진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감사하지도 않고 그 고통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열매만 먹기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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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회개 없이 죄의 사유가 가능하다는 설교와,

교회의 규율을 무시한 침례와,

죄의 고백 없이 베푸는 성만찬과,

은밀한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은,

바로 순종 없는 은혜요,

십자가 없는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한 값없는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요.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10:38)

 

오늘날 교회들은 교인의 수를 늘리기에만 급급해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나 회개 그리고 져야 할 십자가는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오직 축복과 위로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밖에 나가서는 자기가 교인임을 밝히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밝히므로 따르는 여러 가지 제약과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어떤 감격도 체험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교인들이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던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전연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성령을 체험했다며 방언도 하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낸다고 하면서,

자신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자리에선 뒤로 물러나 앉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할 자리에선 뒤로 물러나 앉습니다.

 

고난에 참예함을 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랐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 2:21)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벧전 4:13)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할 때 어떤 어려움이 우리의 앞을 가로 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이기는 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함께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그 것이 십자가일지라도 자신을 복종시키는 우리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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