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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19)

 

피터 러크만은 그의 빌립보서 주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건강이 없이도 얻을 수 있고, 재산 없이도 얻을 수 있고, 교육 없이도 얻을 수 있고, 사회적 지위 없이도 얻을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누구도 구원의 확신, 슬픔과 고난의 때에 주시는 성령의 위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요하시고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며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시편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의 풍성한 분이시라는 고백은, 그 풍성함이 나에게 복으로 다가올 것임을 말합니다.

 

야곱은 그의 임종시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불러 놓고 축복합니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가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49:25-26)

내 부여조란 야곱의 아비인 이삭과 또 그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나 이삭의 하나님이나 또 자기의 하나님이 다 같은 하나님이지만,

자기 아비의 하나님보다 또 자기 할아버지의 하나님보다 자기의 하나님이 더 큰 복을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자식들에게 소개를 할 때 할아버지나 아비의 경험한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 자신이 친히 경험한 그 하나님을 힘주어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자식들이 살아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할 때 멀리 있었던 할아버지의 하나님이나 아비의 하나님을 들먹이는 자가 되지 말고,

나 자신이 삶에서 친히 경험한 그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남들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하여는 잘 알면서 또 많이들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말하면서 남들에게 복을 주었던 하나님을 말함이 아니고,

친히 자기 자신에게 풍성히 주시었던 하나님 즉 "나의 하나님"를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어떤 하나님과 살고 있습니까?

남들이 말하고 있는 소문에 들은 하나님과 살고 있지는 않은가요?

멀리 있는 그런 분이 아니고 나와 함께 있는 "나의 하나님"이라 말 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힘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믿음 생활을 오래 해 왔는데도 하나님이 멀리 있는 분으로 느껴지는 분들이 있다면,

이는 분명히 하나님을 위한 적극적인 삶 즉 최선의 삶을 살지 못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적극적이고도 헌신적인 삶을 드리려고 힘써 봅시다.

하나님을 위하여 여러분 전부를 다 드려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한 그 자리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드린 그 자리에,

복음을 위하여 버리신 그 자리에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꽉 채워 주심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풍성히 주시었던 하나님,

야곱에게 풍성히 주시었던 하나님,

다윗에게 풍성히 주시었던 하나님,

사도 바울에게 넘치도록 주시었던 하나님을 우리 모두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힘 있게 자랑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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