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아내

2026.06.28 10:57

정근태 조회 수:71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19:26)

 

구원을 향한 탈주의 시간에 간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롯의 아내는 멸망의 도성을 빠져나오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한 줌의 소금 기둥으로 굳어 버렸습니다.

 롯의아내.jpg

 

성경은 그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다만 "롯의 처"라는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게 합니다.

도대체 그는 왜 그토록 위험한 순간에 뒤를 돌아보았던 것일까요?

소돔과 고모라는 그가 평생을 일구어 온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그가 가꾸어 온 집과 살림이 있었고, 익숙했던 거리와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딸들을 시집보내기로 했던 그곳의 약속과 정붙인 삶의 자취를 차마 버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뒤돌아 봄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애착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그와 비슷한 마음의 흔들림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라 하실 때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종종 옛것을 향해 미련을 두곤 합니다.

위기와 변화의 순간일수록 우리는 더더욱 익숙했던 과거의 삶을 붙들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재물인지, 관계인지, 혹은 그저 편안했던 옛 습관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롯의 아내의 마음 한편에는 "이만큼 왔으면 되었다"는 안주함이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천사가 산으로 도망하라 명했음에도, 그는 마음속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멈추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의 여정에서 종종 그런 안주의 마음을 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며 걸음을 늦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구원의 길은 적당히 타협된 거리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소금 기둥이 된 그의 모습은 단지 한 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한 도성의 멸망을 넘어서, 생명과 세상의 소유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강렬한 경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732절에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다가올 위기 속에서 무엇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묻게 하는 음성입니다.

신앙의 여정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또는 스스로 굳건하다고 여긴다고 해서 결코 안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애착과 믿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씁니다.

세상의 것들을 적절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아 멈추게 할 때에는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오히려 그 순간을 경계의 손길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더 깊이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은 때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방향을 잃게 만드는 위험이 되기도 합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자 했던 그 결단을 떠올려 봅니다.

그 결단은 옛 삶에 대한 미련을 끊어내고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결단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비록 연약할지라도, 결국에는 앞으로 걸어가려는 굳은 결단이 우리 삶 가운데 자리하여야 합니다.

 

 

 

SITE LO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