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3 07:0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창세기 19:18-23)
소돔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온 그날 새벽, 롯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성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믿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이 그를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산으로 도망하라."
그러나 롯은 고개를 저으며 말합니다.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고백입니까. 방금 전 하나님의 사자가 손을 잡아 이끌어 주셨는데, 그 손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그는 "나는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도시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의 영혼은 그만큼 무너져 있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온 삶은 그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은혜를 자기 입으로도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그런데 그 고백 뒤에는 "그러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구원하시오나, 그러나 나는 산까지 갈 수 없습니다."
은혜 뒤에 순종이 아니라, 은혜 뒤에 조건이 따라온 것입니다.
롯은 대담하게 스스로 타협책을 만들어 제안합니다.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소알.
그 성읍도 사실 소돔과 다를 바 없이 부패한 땅이었습니다. 원래는 멸망 당할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간청합니다.
”산 대신 그 평야의 작은 성읍으로 가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응답은 놀랍습니다.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 일에도"
이 짧은 말 안에 얼마나 깊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까. 마치 '네가 완전한 믿음을 보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다. 이번에도 들어주겠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부조와 선지자》는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 과오를 범하는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얼마나 큰가!"(부조와 선지자, 161)
하나님은 완벽한 믿음을 보여야만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떨며, 더듬거리며,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는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는 분입니다. 롯이 옳은 방향을 선택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그 부족한 간청 안에서 그를 살리실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가장 빛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자녀가 안전하게 피하기 전에 심판을 내리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능력의 한계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구원을 받기까지,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어떤 일도 먼저 행하시지 않으십니다.
불꽃은 롯이 소알 성문을 들어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새 아침이 밝아오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뒤에 "그러나"를 붙이는 롯의 이야기는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종종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길은 가기 어렵습니다."
"주님이 저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쪽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은혜 뒤에 "그러나"를 붙이는 것. 구원의 손을 잡으면서도 자기 계획을 놓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런데 《가려뽑은 기별》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무한하신 주님의 자비는 정죄하는 것보다도 용서하기를 더욱 서두르시고 더욱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셔서 우리들의 그릇된 점만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구조를 알고 계시며 우리들이 진흙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무한하신 동정심과 자비를 가지시고 우리들의 모든 타락한 상태를 고쳐주시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값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당신의 빛을 거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빛을 우리들에게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2기별, 231)
하나님은 우리가 진흙임을 아십니다. 두려움에 흔들리고, 믿음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하며,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 안전을 먼저 계산하는 피조물임을 아십니다. 그래서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을 향해 더 몸을 낮추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손을 내미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손을 뿌리치지 않는 한, 그분은 결코 먼저 손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산상 보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잘못을 범하는 자들, 시험을 당하는 자들, 궁핍과 죄의 희생물이 된 가련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때 그들을 도와 줄 가치가 있을까 하고 묻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그들을 도와 줄 수 있을까 하고 묻게 된다. 그는 가장 가련하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면서까지 구원하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시켜 화목의 봉사를 하도록 하신 영혼들을 본다.“ (보훈, 22)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 우리의 자격을 먼저 계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롯이 충분한 믿음을 가졌는지 심사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그를 사랑하셨기에 살리셨습니다.
이웃의 허물을 보기 전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먼저 보십시오.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깊이 넘어진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구원하고자 하셨던 한 영혼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살렸습니다. 이제 그 자비가 우리를 통해 흘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다 베푸시기 전에는 결코 먼저 행동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도 사랑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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