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3 14:34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세기 19:17)
소돔과 고모라의 하늘 위로 심판의 불꽃이 치솟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손수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그것도 말씀만으로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롯의 가족의 손을 친히 잡아끄셨습니다.
이 작은 몸짓 하나가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선포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멸망의 성 밖으로 우리를 직접 이끌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성 밖으로 이끌려 나온 롯의 가족에게 천사는 네 마디의 명령을 전합니다.
짧고 단호하지만,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설계가 담겨 있습니다.
이 네 마디는 단순히 고대 소돔 사람들을 향한 역사적 경고가 아닙니다.
오늘도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하고 뜨거운 사랑의 음성입니다.
첫 번째 명령은 "도망하라"입니다.
죄의 자리에서 즉각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지체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구원은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머뭇거림이 없는, 즉각적인 결단입니다.
멸망이 예고된 장소에서 안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도망하라"는 명령은 냉정합니다.
협상의 여지가 없고, 조건이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죄의 습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던 세속의 자리에서 과감히 발걸음을 옮기라는 촉구입니다.
불길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서 있는 자는 스스로 그 불길을 선택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 즉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그것이 생명을 보존하는 첫걸음입니다.
두 번째 명령은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완전히 결별하라는 명령입니다.
발은 앞을 향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뒤를 돌아본다면 이는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떠났으나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묶여 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없습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이 주는 달콤함, 과거의 안락함, 한때 누렸던 풍요로움에 대한 미련입니다.
그것은 아직 세상에 빚진 것이 있다는 마음이요, 십자가보다 소돔이 더 가치 있다는 고백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결코 세상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세상에 대한 미련과 온전히 결별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세 번째 명령은 "들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색지대를 거부하라는 말이지요.
중간 지점에는 안전이 없습니다.
소돔 성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이미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들에 머무르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들'은 소돔과 구원의 산 사이에 있는 중간 지대입니다.
성에서 나왔으니 떠난 것 같지만, 산에 이르지 않았으니 안전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위험한 공간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명백한 죄악은 떠났지만,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나아가지도 않은 상태. 예배는 드리지만 삶의 방식은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신앙은 언제든 다시 심판의 불길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영적인 회색지대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약속하신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야 합니다.
네 번째 명령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피난처를 예비하셨습니다.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앞의 세 명령이 무엇으로부터의 탈출이라면, 이 마지막 명령은 무엇을 향한 돌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치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숨을 '안전한 산'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 사실이 복음의 심장입니다.
심판이 선고되기 전에 피난처가 먼저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산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힘과 노력, 종교적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신 하나님 자신이요, 십자가에서 단번에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시편 기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산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가 우리의 도움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소돔의 심판을 우리의 의지나 결심으로 피할 수 없듯이, 죄와 사망의 심판도 우리 스스로는 통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 '구원의 산' 안에 들어갈 때에만 진정한 안전과 평안이 주어집니다.
"만약 시간을 더 달라는 롯의 요구가 승인됐다면, 그는 날짜가 흐를수록 평생 축적한 재물과 결별하기가 점점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남아있기로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유일한 안전책은 그의 마음을 소돔에 붙잡아 둔 것들과의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결별에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재림교 성경주석)
롯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소돔의 재물과 안락함이었습니다.
평생 땀 흘려 모은 것들이었기에, 시간이 주어질수록 그 끈은 더 강해졌을 것입니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그는 구원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소돔과 함께 불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죄와의 결별은 '다음에', '조금만 더 있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덫은 우리의 발목을 더 깊이 옭아맵니다.
머뭇거림은 저항이 아니라 패배입니다.
지금 이 순간,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여전히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나만의 소돔'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손을 잡으시고 멸망의 성 밖으로 이끄시며 말씀하십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도망하라. 미련을 두어 돌아보지 말라. 어정쩡하게 들에 머물지 말고, 내가 너를 위해 예비한 구원의 산, 십자가의 그늘 아래로 속히 나아오라."
세상의 미련과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결별하고,
오직 우리를 살리시는 구원의 산이신 주님 품으로 날마다 힘차게 달려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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