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5 21:59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창세기 19:15–16)
하늘의 사자들은 다급하게 롯의 어깨를 흔듭니다.
"일어나라, 이곳을 떠나라!"
그것은 정중한 권고가 아니었습니다.
타들어 가는 심장으로 외치는 마지막 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망설입니다.
얼마나 어이없는 풍경입니까?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소돔'이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크고 작은 애착의 닻을 내려두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익숙함, 놓기 두려운 작은 안락함,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때 찾아올 허전함.
그 무게들이 발목을 붙잡고 속삭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사의 경고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울려 퍼집니다.
멸망은 반드시 자신의 큰 악행으로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시간에, 죄악의 도성으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그 '함께 있음' 자체가 운명을 가릅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는 것,
그것이 가장 조용하고 가장 치명적인 선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유황과 불이 하늘에서 쏟아지기 직전, 롯의 가족은 여전히 머뭇거립니다.
두 발이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마치 오랜 세월 내린 뿌리처럼, 소돔 땅에 붙박여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 순간, 천사들이 몸을 낮춥니다.
그리고 롯의 손을, 아내의 손을, 두 딸의 손을 직접 잡아챕니다.
그들을 이끌어 성문 밖에 세웁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문장입니까.
이것은 롯의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롯의 용기도, 믿음의 승리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였습니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자를 향해, 기다리다 못해 직접 달려와 손을 잡아채시는 그 사랑.
우리의 완고함과 느림을 탓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것을 감싸 안으시는 그 인자하심.
“하나님은 모든 자비의 근원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자비롭고 은혜"(출 34:6)로우시다. 그분은 우리를 우리의 가치에 의해 취급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가치 있게 해주기 위하여 당신의 풍성한 사랑을 부어 주신다. 그분께서는 원한을 품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벌을 주려하지 않으시고 구속하려 하신다. 당신의 섭리를 따라 나타내시는 엄격함도 실은 완악한 자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고통을 씻어 주고 그들의 상처에 향유를 발라 주고자 심히 갈망하신다.” (산상보훈, 22)
심판의 불길 속에서도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의 더딤은 수치가 아니라, 도리어 은혜가 임하는 자리가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까?
그 대답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내 믿음이 그만큼 견고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의 완고한 손을 잡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분은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 앞으로 돌려세우셨습니다.
내가 주저앉고 싶을 때, 내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조용히, 때로는 뜨거운 눈물처럼 절박하게, 그 음성은 늘 내 귓가에 머물렀습니다.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
그 처절하고도 감격스러운 한 마디가, 오늘의 나를 있게 했습니다.
멸망의 성벽 밖으로 나를 이끌어내어,
생명의 넓고 고요한 땅 위에 세우신 그 강권적인 사랑 앞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눈물 어린 감사와 경외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는 도저히 발을 뗄 수 없는 저를 아시면서도,
달려와 제 손을 잡아채시는 그 자비가
저의 유일한 살길임을 고백합니다.
당신의 강권하심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소돔 한복판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저를 이 자리에 세우신 그 은혜를
숨이 다하는 날까지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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