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힘

2026.03.21 15:00

정근태 조회 수: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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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창세기 19:10-11)

 

문이 닫혔습니다.

그 짧은 순간, 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얼마나 묵직한 의미를 품고 있는지, 본문을 읽는 우리는 쉽게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그 장면 앞에 서 보십시오.

 

롯의 손님들은 더 이상 폭도들을 향해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이성적인 설득이 가능한 시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 문이 닫히는 순간,

그저 문 하나가 닫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문이 닫히는 소리였고,

오래 열려 있던, 그러나 끝내 외면당한 구원의 기회의 문이 소리 없이 닫히는 순간이었습니다.

폭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롯이 그날 저녁 맞아들인 손님들이 과연 어떤 존재였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문밖의 폭도들의 눈을 어둡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을 어둡게 했다"는 표현은 단순히 시력을 완전히 빼앗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섬뜩한 심판의 언어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찾는 바로 그 것, 그 문을 볼 수 없었습니다.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손을 더듬으며 헤매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광경입니까.

그들의 육신의 눈이 그 문을 찾지 못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 역시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죄는 언제나 그렇게 사람을 눈멀게 합니다.

손에 잡힐 듯한 것을 쥐지 못하고,

발 아래 놓인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날 밤, 소돔의 거리에서 벌어진 그 엄청난 죄악,

그것이 유난히 특별한 그 날 밤의 일이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늘 있어 온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롯의 집 문 앞에 몰려든 그 무리는 특별히 일진이 사나운 날을 고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언제나 그래 왔듯이, 그날 밤에도 서슴없이 늘 하던 일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죄가 습관이 될 때, 양심은 침묵합니다.

죄가 문화가 될 때, 수치심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죄가 정체성이 될 때,

돌이킴의 가능성조차 스스로 닫아버립니다.

 

소돔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밤,

그들을 위해 탄원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토록 간절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빌었던 그 기도가 떠오릅니다.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열 명은 없었습니다.

탄원은 응답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탄원이 성립될 근거 자체가 없었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 앞에서 소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젓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열려 있는 은혜의 문을 우리는 알아보고 있습니까?

아직 열려 있는 그 문 앞에 서 있으면서, 혹시 우리도 엉뚱한 곳을 더듬으며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문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문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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