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7 14:53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창세기 19:6-8)
창세기 19장에는 현대인의 윤리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소돔의 불량배들이 롯의 집에 찾아온 나그네들(천사들)을 내놓으라고 위협하자,
롯은 자신의 두 딸을 대신 내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아버지가 딸들을 폭도들에게 넘기겠다는 이 황당한 제안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 소돔이라는 도시의 영적·도덕적 실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서 도덕적 타락의 극치를 달리는 도시로 묘사됩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쾌락주의와 성적 방종이 만연했으며,
나그네에 대한 환대는커녕 폭력이 일상화된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영어 단어 'sodomy'(남색)와 'sodomite'(남색자)가 이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을 만큼 그 악명은 높습니다.
창세기 19장 5절에서 소돔 사람들이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외칠 때 사용된 히브리어 '야다(יָדַע)'는 '알다'라는 뜻이지만,
문맥상 집단적인 성폭력을 의미합니다.
즉, 소돔의 군중은 나그네들에게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공공연히 선포한 상황이었습니다.
롯의 행동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고대 근동의 손님 접대(Hospitality)문화에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손님 접대는 호의의 문제지만,
당시 유목 문화권에서는 생존과 직결된 신성한 의무였습니다.
일단 자신의 집 지붕 아래로 들어온 손님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가문의 파멸이자 평생 씻을 수 없는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주인은 손님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했습니다.
비록 현대 윤리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손님 보호'라는 공적 의무가 '가족 보호'라는 사적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극단적인 논리가 존재했습니다.
학자들은 롯의 이 위험한 제안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해석하곤 합니다.
첫째 - 극단적 희생의 표현
롯은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아서라도 손님을 지키려 했던 절박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보다, 그만큼 소돔의 압박이 거셌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 전략적인 협상안
롯의 딸들에게는 이미 소돔인 약혼자들이 있었습니다(창 19:14).
롯은 "너희에게 시집가기로 약속된, 너희의 아들의 아내를 해칠 셈이냐?"라는 논리로 군중의 광기를 잠재우려 했던 외교적 수사였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셋째 - 환경에 동화된 신앙인의 한계
성경은 인물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롯은 의로운 사람이었으나(벧후 2:7),
오랜 시간 소돔에 거주하며 그곳의 폭력적인 해결 방식에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딸의 희생)을 제안하는 롯의 모습은 타락한 환경이 의인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의 결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장면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인간이 내놓은 최선의 해결책은 사실상 또 다른 비극일 뿐이었으나,
결국 위기에서 건져내시는 분은 인간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이었다는 점입니다.
롯의 제안은 우리에게 깊은 '불편함'을 줍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오늘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역시 롯처럼 우리가 속한 시대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지는 않나요?
롯의 불완전한 판단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원하신 사건은,
인간의 의로움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구원의 근거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롯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아버지의 실책을 고발하는 글이 아닙니다.
도덕이 실종된 도시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한 인간의 처절한 한계와,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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