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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에 의인 오십명이 있다면 그들을 위하여 소돔에 멸망을 내리지 말 것을 주문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대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창세기 18:26)

 

소돔을 앞에 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는, 심판의 엄숙함보다 긍휼의 깊이를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장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멸망을 재촉하는 분이 아니라, 끝까지 살릴 이유를 찾으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차, 오십명이 않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숫자를 낮추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창세기 18:27-33)

 

아브라함은 숫자를 계속 낮추고,

하나님은 모든 경우에 아브라함의 말을 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오십에서 사십오로,

사십으로, 삼십으로,

이십으로,

마침내 십으로 내려가는 이 숫자의 여정은,

하나님의 관심이 '얼마나 많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가?'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멸망시키려 하심이 아니고, 구원하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단 열 명.

전체 인구에서 보면 보잘것없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열 명만 있어도 성 전체를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도시의 운명이 다수의 악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로움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놀라운 진리가 여기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도 그렇게 지탱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들,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여전히 심판 대신 은혜 가운데 숨 쉬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누리는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이 열 명에서 멈춘 이유는, 어쩌면 깨달음 때문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오십 명과 열 명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한 열 명과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예레미야 5:1)

 

심판의 원인은 악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백성을 위해 서 줄 사람, 그리고 그를 따라 회개할 백성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간구의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이 고백은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티끌과 재.

그것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느끼는 영혼 깊은 곳의 겸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결국 어디로 돌아갈 존재인지를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단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토기장이 앞의 진흙처럼, 그는 자신의 본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는 하나님을 제대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냉정한 심판자가 아니었습니다.

기꺼이 용서하시고, 살리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러한 깨달음 위에서 아브라함은 중보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 또한 사랑하게 됩니다.

비록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죄짓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가능합니다.

타인을 위하여 드리는 사랑의 중보는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행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서 자신의 닮은 모습을 발견하고 기뻐하듯,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사랑과 긍휼을 닮아 이웃을 위해 서는 사람을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중보의 기도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당신의 위대한 사랑의 심령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기도는 소돔을 구하지 못했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영원히 증언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서서, 무너진 곳을 막아 설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멸망을 선언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중보자는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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