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중앙 아시아 지역의 수피즘

2004.11.24 10:11

정근태 조회 수:7019 추천:35

이슬람은 약 150여개가 넘는 분파가 있는데,  이들은 크게 수니(Sunni)파와 시아(Shi'a)파로 나눌 수 있다.  중앙 아시아 지역의 이슬람은 수니파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구분을 위한 형식적인 분류이고, 사실상 이들은 이슬람과 그들 특유의 민족적 기질, 그리고 샤마니즘이 혼합된 형태의 이슬람인 수피즘(Sufi tariqat)의 영향 아래 있다.

수피(Sufis)라는 말의 ‘Suf’는 양털 옷을 말하는데, 이는 이들이 양털 옷을 입고 신비주의적인 생활에 몰두했기 때문에 얻게된 이름이다.  중앙 아시아 지역에 전파된 이슬람은 이슬람 전파 이전의 중앙 아시아 특유의 인종적, 종교적, 부족적 요소와 결합하여 ‘생활 속의 이슬람’이라는 중앙 아시아 지역 특유의 경향을 만들어냈다.  이 ‘생활 속의 무슬림’이 바로 수피즘(Sufism)이다.

투르크족 사이에서 이슬람이 민족 종교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말 카라한트(907-1124) 제국과 11세기 셀축 제국의 성장과 연관이 깊다.  이슬람의 주요한 교리 가운데는 성전(聖戰, Jihad, 거룩한 전쟁 - 즉 알라를 믿는 무슬림 집단이 비 무슬림 집단에 대항하여 수행하는 전쟁을 의미한다.)이 있다.  그런데 투르크계 제국들은 과거처럼 제국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는데, 이슬람을 받아들인 후에는 이러한 일상의 전쟁이 신의 이름으로 수행되니 군인들과 부족원들의 사기가 더욱 올라가 제국의 확장에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크게 기여하게 된 것이다.  즉 유목민으로서 단순히 부족의 경제적 유익을 위한 전쟁 수행이, 알라의 은총을 입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종교 행위로서의 성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의 최고 통치자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이슬람이 국가의 종교가 되었고, 또한 민족의 종교로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중앙 아시아 지역의 투르크족들은 전통적으로 고대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처럼 노래하며 춤추며 놀기를 좋아하는 민족들인데,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놀이 문화와 음악, 그리고 음주를 근본적으로 죄악시하는 까닭에, 전쟁을 격려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인들의 체질에 맞는 종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집단 종교인 이슬람을 그들의 문화에 맞게 토착화하였는데, 이러한 욕구에 부응해서 일어난 운동이 바로 수피즘(Sufism) 운동이다.

즉 이슬람 수피즘 운동은 중앙 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던 투르크족들 사이에서 독창적으로 발달한 종교 운동으로서,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옛날부터 전해지던 샤마니즘과 그들의 민족성, 그리고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과 형제애가 혼합된 영적 운동이다.  따라서 전통적 이슬람에서는 샤마니즘적인 형태로 취급되는 영적인 힘이 강조되며, 성가(聖歌)를 중앙 아시아 지역의 전통 악기에 맞추어 부르고, 다분히 형식주의적인 코란의 율법에 순종하기보다는 삶과 신앙에서 ‘신을 체험하는 것’이 강조된다.  그들은 코란의 내용은 거의 모르며, 율법도 잘 모른다.  단지 그들은 영적 체험을 통해서 신을 가깝게 느끼며 형제애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이슬람이 형식주의적이며, 율법주의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종교임에 반해, 수피즘은 체험적이며 현세적인 요소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16-18세기 오스만제국의 전통적 이슬람 학자들은 수피즘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핍박하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을 강조하고, 성가(聖歌)를 부르고, 종교 지도자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적 직업을 가지고 일반인들과 함께 살며, 서로 나누는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12세기에 소아시아에서 처음 투르크족 수피 종파를 만난 그리스계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진보된 기독교의 한 종파로 오해하기도 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들의 사상인 인간과 신의 연합과 만물이 신으로부터 나오고 다시 거룩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브라만교도(Brahmins)나 불교와 매우 흡사하다고 보기도 한다.  수피즘은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같은 사고 체계를 가지고있다. 그들 안에서는 절대적인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적인 것이 수피즘 안으로 들어오면 수피즘은 반드시 그것을 상대화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수피즘의 영향을 받은 무슬림이 회심해 온다고 해도 우리가 믿는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의 유일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그 동안 영향을 받은 수피즘적 세계관 안에서 예수님의 유일성을 해체시키고 나름대로 해석된 예수를 믿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통 이슬람 이외의 각 지방의 민속 이슬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므로, 수피즘은 우리의 연구의 대상이고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수피즘적인 신앙 현상을 해체시키기 위해서 원리주의 성향을 띤 무슬림들은 이를 이단으로 규정했지만 결국에는 현실적으로 허용할 수 밖에 없었고, 러시아의 짜르(Царь) 정부는 중앙 아시아 지역의 땅과 사람들은 식민지화했지만 수피즘 만큼은 우회해 갈 수 밖에 없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수피즘이 지역민들의 마음과 의식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독립 이후에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향한 탐색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 수피 무슬림의 성현 예배나 성현의 무덤을 찾아다니는 행태는, 비록 18세기 현대 이슬람교의 부흥 운동을 이끈 와하비 부흥 운동의 중심 인물인 무함마드 빈 압돌 와합(Muhammad bin Abdul Wahab, 1703-1792)과 그의 스승인 한발 학파의 이븐 타이미야(Ibn Tahimiya)에 의하여 비판받고 정죄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수피 무슬림의 전통이 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증앙 아시아 지역의 투르크족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그들의 전통과 문화는 매우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의 영향이 뚜렸히 나타났고, 문화적으로는 중국보다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인 수피즘은 바로 이러한 페르시아적 이슬람과 투르크 민족 고유의 문화 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중앙 아시아 지역의 이슬람은 아랍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페르시아적, 혹은 투르크적 이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사랑과 형제애, 종교 지도자들과 일반인들 사이의 관계의 평등 의식, 전통 음악을 사용한 성가, 묵상, 기도 등 새로운 영적 운동을 통해서 이슬람을 투르크 족의 민족 종교로 뿌리내리게 했을 뿐 아니라, 당시의 형식화되고 경직된 소아시아 지역의 기독교를 누르고, 오히려 많은 기독교인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면서 한 때 번성했던 소아시아 지역의 기독교에 종말을 고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토착화된 수피즘은 특히 이슬람을 강하게 억압했던 몽골의 중앙 아시아 지배 시기에도 투르크족의 정체성과 이슬람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지금도 이슬람을 투르크족, 이란족, 아랍족의 이슬람으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이슬람이 역사적 배경과 성격 그리고 실제에 있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중동의 이슬람에 대한 접근이 문헌적, 교리적, 변증적임에 비해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에 대한 접근은 영적이며 체험적이여야 한다.

지금 중앙 아시아 지역에 진출한 개신 교회 중에서 영적 경험을 중시하는 오순절 계열, 혹은 순복음 교회가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한민족의 기독교가 변증적이고, 교리적이기보다는 체험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도 이 지역에서 한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교회들의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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