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셀축(Selcuk) 제국(1038-1194)

2004.11.05 10:54

정근태 조회 수:11611 추천:45


셀축 제국은 투르크계 오우즈(Oğuz)부족의 장군인 셀축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당시 스텝지역의 서부인 트랜스옥시아나 지역에서는 페르시아(Persia)계 이슬람 왕조인 사만(Saman, 887-999)조(朝)와 투르크(Turk)계 이슬람 왕조인 카라한(Karahan, 840-1212)조(朝)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셀축은 사만조(朝)를 도와 카라한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사만조는 이 승리의 대가로 부하라(Бухара)와 사마르칸드(Самарканд) 지역을 셀축에게 넘겨줌으로 셀축 제국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내부의 분쟁에 의하여 분산되어있던 부족들은, 셀축의 손자들이며 셀축 제국의 실제적인 창립자인 투우룰(Tugrul, Toghril)과 차으르(Chagry)에 의하여 재통합되었다. 이들은 니샤푸르(Nisapur)를 장악하여 제국의 수도로 정하고 투우룰을 술탄(Sultan)으로 추대하여 셀축 제국을 탄생시켰다. 계속하여 셀축 제국은 가즈나(Ghaznavid)조를 붕괴시키고(1040년), 레이(Rey)와 이스파한(Isfahan)지역을 장악하였으며, 이란의 고원 지역을 장악하여 투르크계(系) 이슬람 제국(Islam 帝國)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1055년에는 아랍 정통 이슬람 왕조인 압바스(Abbas)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에 진군하여 무너져가는 압바스 왕조를 구해냄으로, 이슬람 왕조의 보호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셀축 제국은 이방인으로서 정통 순니파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결국은 이슬람의 심장부를 접수하여 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셀축 제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서북방의 기독교 제국들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는데, 1064년에는 아르메니아(Armenia)의 수도 아니(Ani)와 소아시아, 아나톨리아(Anatolia)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지역까지 석권하였다. 결국 셀축 제국은 1054년에 이르러 비잔틴(byzantine) 제국과 충돌하기 시작하였고, 1071년 8월에는 마침내 현재의 터어키 동부의 반(Van)호수 근처 말라즈기르트(Malazgirt)에서 기독교 군대와 대접전을 벌이게 된다.(이 전쟁은 매우 중요한 전쟁으로 인식되었다. 셀축 군은 술탄 투우룰의 뒤를 이은 술탄 알프 아르슬란(Alp Arslan)이 직접 지휘하였고, 비잔틴 군은 디오게네스(Romanus Diogenes) 황제가 직접 지휘하였다. 비잔틴 군은 프랑크, 노르만 용병들이 대거 합세하여 20만의 병력을 이루었고, 셀축 군은 5만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셀축 군은 유목민의 고유 전술인 매복과 기습을 통하여 비잔틴 군을 격파하고 비잔틴 제국의 황제를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리는 등 대 승리를 거두었다.)

투르크족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나톨리아 셀축 제국을 이루었고, 그 이후로 오스만 제국과 터어키로 이어져 지금까지 소아시아의 주인으로 남아있게 된다. 반면 비잔틴 제국은 말라즈기르트 전쟁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 등을 통하여 소아시아의 탈환을 위해 노력했으나 오히려 투르크계 오스만(Osman)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Sultan Mehmed Ⅱ)에 의하여 1453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 점령당함으로 멸망하게 된다.

술탄 알프 아르슬란(Alp Arslan)의 아들 술탄 멜릭샤흐(Melikshah)이후에 제국은 계속되는 십자군 전쟁과 내부 분열등으로 아나톨리아(Anatolia), 시리아(Syria), 키르만(Kirman), 호라산(Horasan) 등으로 나누어져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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