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오전이 되었지만, 정작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마크셋은 말했다. 그는 모든 입고갈 옷 딱 한 벌 빼놓고는 모두 동료 재소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갖가지 잡동사니도 모두 처분하고 가져 갈 것만 여행가방 안에 꾸려 둔 상태였다. “점심시간이 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고, 조금씩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1시가 되었는데도 아무 낌새가 없었다. 지금쯤이면 누군가가 와서 나를 데리고 출소를 위한 수속을 진행해 주어야 정상이 아닌가?” 몇 개월의 감옥 생활을 통해서 죄수의 출소는 보통 오전부터 행정 절차가 시작해 4시 전에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1시가 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아직까지도 핸드폰은 은밀하게 숨겨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왜 아무도 안오는거야?” 아이굴이 대답을 미처 하기도 전에, 그가 갇혀 있던 감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감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급히 핸드폰을 감추었다. 들키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도관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왜 감추시나? 석방되는 마당에 그건 내게 선물로 줄 수 있는거 아닌가?” 그는 석방명령서를 소리내서 읽어주고는 말했다. “이젠 여기서 나갈 시간이라네.” 그리고는 앞장을 서서 걷기 시작했다. 마크셋 역시 이미 짐은 다 가방에 꾸려 놓은 상황이기에 바로 가방만 집어 들고,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교도소 행정사무실에서 몇 건의 서류에 서명을 했는데, 내가 앉아서 서류를 작성하고 서명을 하던 맞은 편에는 나를 기소했던 검사가 별로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석방되기 위해서는 그 여검사도 내가 서명한 몇몇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내가 서류 작성을 마치고 일어나려고 하자, 여검사는 교도관에게 내가 교도소 밖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따라가서 교도소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라고 명령했다.” 나도 반사적으로 물었다. “교도소 밖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즈벡 정부겠지.” 검사는 대답했다.

이게 농담인가 진담인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정말 우즈베키스탄으로 송환되는 것인가? 차라리 그냥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못한 것 아닌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지라, 정신 없이 걸음을 옮겨 마지막 문을 나서려고 문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석방서류를 보여주려고 할 때, 문 바로 밖에서 한 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누구인지 잘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밖에 눈발이 심하게 날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몇걸음 더 나가면서 그녀가 아내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아내 바로 옆을 경호하듯 지키고 있던 UN 관리 3명은 모처럼 만의 상봉의 순간을 느낄 새도 없이 급하게 마크셋 부부를 차에 집어 넣고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차량이 도착한 곳은 카자흐스탄 내의 UN난민고등판무관실 사무실이다. 치외법권 지역이니 일단 안심을 해도 되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또 몇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에 아이굴은 지인에게 맡겨 놓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실로 오랜만에 식구들이 한데 모인 것이다. 두 살 난 아들 아람은 잠든채였다. 잠시 후에 아람이 잠이 깬 것은 공항에서 였다. 공항에서 마크셋을 본 아람은 낯설어 하는 눈치였다. 반면 큰 아들 무라트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만한 나이였다. UN 사무실에서 나와 공항으로 이동하고,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 매우 침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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