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마크센 자바르베르게노프는 카자흐스탄의 감옥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감옥살이도 고통스러웠지만 그의 출신국인 우즈베키스탄으로 추방하겠다는 위협은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그는 90일 가까이 감옥에서 보냈다.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외국인이 소규모의 기독교 공동체를 이끌었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2007년까지 우즈베키스탄 내에서는 수배자 신분이었다. 그리고 국경을 몰래 넘어 카자흐스탄으로 들어 왔다. 만일 계속 우즈베키스탄 안에 머물러 있다가는 언젠가는 체포될 것이 분명했다. 카자흐스탄의 UN난민고등판무관실로부터 그는 난민자격을 얻어 카자흐스탄에 머무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2009년까지는 그렇게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에 들어서면서 우즈베키스탄은 갑자기 그에게 테러혐의가 있다며, 카자흐스탄 정부에 대해 그를 송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만일 송환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는 테러혐의라는 있지도 않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15년 정도의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게 될 것이다. 일단 카자흐스탄 정부는 그를 구속했다. 그와 임신한 아내 아이굴, 그리고 네 자녀는 주거가 제한되었고, 그는 작년 9월 5일에 구속되었다. 그로부터 3개월 간 그는 가족과 떨어져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지난 12월에야 그는 풀려났고,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의 배려로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최근 한 유럽의 기독선교정보기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다만 그들이 머무는 장소는 안전 문제로 밝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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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나는 같은 꿈을 꾸었다. 내가 14년 전에 기독교인이 된 이후, 나는 늘 누군가로부터 쫓겨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매번 극적으로 빠져나가기도 했고, 위기의 일보 직전에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마크셋은 창밖의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창밖의 숲 속에는 하얀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작년 9월, 그 악몽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알마티의 우리 집에서 체포되었을 때, 나는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것,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체포된 것을 먼저 안 것은 그 보다도 그의 아내였다. 9월 3일, 아내 아이굴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의 번호는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아보니 알지 못하는 남성이 그녀의 언니가 도난당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니 경찰서로 오라고만 말했다. 아이굴은 경찰서에 가기는 했지만, 언니의 직계 가족은 아니었기 때문에 언니를 바로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찰서 마당에서 조카, 즉 언니의 딸에게 연락하여 빨리 경찰서로 오라고 연락했다.

바로 그 때 여러 명의 경찰들이 그녀가 탄 차를 둘러싸고는 그녀에게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갈 것을 명했다. 거기서 약 45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알고, 연락하고 지내던 모든 이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게 했고, 지문을 채취하고 사진도 찍었다. 경찰은 모든 조사를 마치자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남편도 이리로 오도록 하라.” 그녀는 경찰의 명령에 따라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그녀는 경찰의 보호와 감시를 받으며 귀가했다. 집에 도착했고, 그녀를 따라왔던 경찰이 돌아가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경찰은 돌아가면서, 우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불안 할 것 없다. 단지 남편의 지문만 채취하면 된다.” 당시 상황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경찰에 불려 갔다 오고, 이어서 아버지까지 경찰서로 가는 것까지 보고 등교한 큰 아들은 걱정이 되었던지, 쉬는 시간 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돌아 왔는지 물었다.”

그날 오후 5시 쯤, 그녀는 다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말했다. “상황이 이상하다. 주변에 알만한 사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서 이제까지의 상황을 알려라.” 거기까지 이야기를 할즈음 남편 옆에 있던 경찰이 황급히 남편의 수화기를 빼앗았다. 그래서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로부터 6인간 아이굴은 남편과 전혀 접촉도 통화도 할 수 없었다. 아이굴은 남편의 말대로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중앙아시아의 전역의 동지 목회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던 교회의 교인들,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 있는 UN난민고등판무관실까지 상황을 알렸다.

UN난민고등판무관실은 빠르게 상황파악에 들어갔고, 마크셋 목사가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재판정에서 그를 우즈베키스탄으로 송환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재판은 9월 7일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일단은 당국이 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40일 간의 구류 처분이 내려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40일 동안 당국과 법원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마크셋은 체포된 후 상당히 험한 대접을 받았다. 폭언을 하고, 구타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구타를 하려고만 하며 위협을 주었을 뿐, 실제로 신체적인 가혹행위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처음 며칠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특히 겁을 주고 불안감을 자극해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느꼈다. 잡혀 오기 전에는 난민 신분으로 합법적인 체류를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좀 힘들어도 늘 마음은 즐거웠었다. 그러나 잡혀 들어온 후부터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가족이 걱정되었고, 송환된 후가 걱정되었다. 또 경찰은 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가족을 해칠 듯이 협박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걱정되었다. 송환되어 우즈베키스탄에서 장기간 옥살이를 할 경우 아내와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도 걱정이었다.” 결국 기도할 수 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절대 너를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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