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몽골(Mongol) 제국(1206-1400)

2004.11.05 10:55

정근태 조회 수:6700 추천:108


예수게이(Yesugey)의 아들인 테무진(Temujin, 鐵木眞)은 1206년 봄, 오논(Onon)강 연안에서 열린 몽골 부족들의 부족장 회의인 쿠릴타이(Quriltai)에서 몽골족 최고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테무진에게는 징기스칸(‘大洋의 최고 군주’, 혹은 ‘황제 중의 황제’의 의미를 갖고 있다.)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징기즈칸에 의하여 세워진 몽골 제국은 1207년과 1209년, 두 차례에 걸쳐 탕구트(Tangut, 西夏 - 탕구트는 1032년에 원호가 나라를 세우고 중국식으로 통치되었으나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상업 위주의 사람과 유목 위주의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거주 방식도 성곽과 유목이 섞여 있었다. 탕구트는 동서교역로(東西交易路) 상에 있었으므로 정부 세입은 주로 통상으로 조달되었다.)를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1211년에는 드디어 중국(金)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몽골의 중원(中原) 정벌은 1234년, 즉 징기스칸의 사후 10년 뒤까지 계속되었고, 결국 정착 왕조인 금(金)은 최초로 유목 민족인 몽골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한편 몽골의 중앙 아시아 지역 진출은 몽골의 사절단(使節團)이 두 번이나 투르크계 콰레즘(Kwarezm) 왕국에서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되었다. 몽골은 콰레즘 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켰고, 또한 중동 지역의 이슬람 제국의 대부분을 정복하였다. 몽골은 부하라(Бухара)와 사마르칸드(Самарканд)를 비롯하여 아르메니아(Armenia), 페르시아(Persia), 러시아(Россия), 카프카스(Кавказ), 노브고로드(Новгород), 드니에프르(Днепр)강에 이르기까지 그 판도를 넓혀갔다. 이후 고려(高麗)로부터 폴란드, 헝가리까지 그 판도를 넓힌 제국은, 대칸(Great Khan) 몽케(蒙哥, Mongke)의 시대에 이르러 완전한 제국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260년, 쿠릴타이에 의하여 대칸(Great Khan)으로 선출된 쿠빌라이(Qubilai)는 수도를 자신이 총독으로 통치하던 정착 지역인 중국의 북경으로 옮기고, 국호를 중국식으로 원(元)이하 칭함으로, 그 통치 근거지가 유목 지역으로부터 정착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후 그는 송(宋)을 완전히 정복하고 수마트라(Sumatra)와 자바(Java) 를 공략하는 등 세계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영토의 팽창의 결과로 제국은 각 지역에 총독들을 세워서 제국을 분할 통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도에 의하여 제국의 영토 내부에 생겨난 칸(Khan)국들은 각각 서서히 이슬람화 되어 갔다. 일 칸국(Il Khan, 1256-1335)은 페르시아, 중동 지역등 이슬람 세계와 그 국경을 접하는 위치에 있었고, 이들의 영향에 의하여 서서히 이슬람화되었다. 금(金) 호르드(Golden Horde, 킵차크 칸국, 1237-1502)는 동유럽에까지 그 판도가 팽창하였으나, 투르크족의 깊은 영향으로 투르크화 되었는데, 이는 동시에 이슬람화 되었음을 의미했다. 여러 칸국 중 비교적 순수한 유목 국가였던 차가타이 칸국은(Chagatay, 1227-1334) 투르키스탄(Türkistan)과 트란스옥시아나 지방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소수의 지배층인 몽골족이 그 지역 주민인 투르크족에게 흡수, 동화되어 완전히 투르크화하고 말았고, 이는 역시 이슬람화 되었음을 의미했다. 결국 제국은 중앙의 내분과 지방의 자치주의적 경향과 함께 피지배민족 문화의 우세로 급속한 붕괴와 멸망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나 몽골 제국 시대에는 초원길과 비단길 등, 동서양의 교통로가 크게 확장되고, 이러한 교역로의 확장은 동서양의 문화 교류가 확장되었는데, 이는 몽골 정부가 도로망을 정비하고, 도로마다 상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역사(驛舍)를 설치하여 숙박이나 역마(驛馬)를 제공하는 등 대외 무역과 통상, 통교(通交)를 장려한데 힘입은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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