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그르(오르콘, Orkhon) 제국(745-840)

2004.11.05 10:52

정근태 조회 수:6840 추천:48

돌궐의 마지막 왕 텡그리(Tengri)를 제거한 바스밀(Basmil), 위그르(Uygur), 카를록(Karluk)부족의 연합군은 돌궐을 멸망시킨 뒤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되는데, 이 다툼은 결국 위그르의 일테베르(Ilteber)가 정권을 장악함으로 끝나고, 그는 자신을 카칸으로 선포함으로 위그르 제국이 출범하게 된다. 위그르 제국은 이테치엔(移地健, I-te-chien), 즉 牟羽(Mu-yu) 카칸의 재위 기간인 759년부터 779년까지가 최극성(最極盛)기간이었는데, 그의 재위 중에 제국의 판도는 알타이산맥에서 바이칼(Baikal)호에 이르렀다.

위그르 제국은 약 100여년간 아시아의 중심 지역에서 동양과 서양의 교역을 통제하고 관할하였다. 위그르 제국은 중국과는 대체로 선린(善隣) 관계를 지속했고, 일방적인 주종 관계가 아닌 평등 관계에 있었다. 중국이 정치, 군사적으로 어려울 때에는 우세한 군사력을 지닌 위그르 제국이 중국을 돕는 일이 많았다. 일례로, 757년에는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으로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점령당하고, 황제인 현종은 사천(四川)으로 피난하는 등, 어려움을 당한 당(唐) 조정을 구원하기 위해 위그르군이 출병하였는데, 이들은 중국군과 연합하여 낙양을 반란군으로부터 탈환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의 수도인 장안까지 진군하여 당조(唐朝)를 돕기도 했다. 반대로 위그르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중국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한편 스텝(steppe) 서부의 사마르칸드(Самарканд)와 부하라(Бухара) 지역에는 최소한 4세기 때부터 페르시아계의 소그드인(Sogdian)들이 살면서 비단길의 중계 무역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위그르에 흡수되어 투르크족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그드인들은 위그르인들에게 마니교(Manicheism)를 전해 주었다.

이후 762년에는 위그르의 카간 뵈귀(Bögü)가 마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등, 마니교는 위그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유목 민족 최초로 집단적으로 정착민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위그르의 정착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위그르인들은 정착을 위해 스텝의 평야 지대로 이동하게 되었고, 중앙 아시아 유목 민족 최초로 성곽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유목 민족의 특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군사적으로도 그 활력이 약해진 위그르 제국은 840년 키르기즈(Kyrgyz)위그르를 멸망시킨 키르기즈(Kyrgyz)는 강력한 부족 연맹이었으나, 다른 민족들과 같은 제국을 건설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목 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따라서 도시와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 의해 멸망하였다. 그러나 마니교의 영향력은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마니교의 영향은 도시화와 정착화를 촉진시켰으며, 소그드인을 거쳐 중앙 아시아에 문자를 제공했다. 그 결과 위그르인들은 스텝 민족 최초로 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패망한 위그르는 다시 다양한 씨족 연맹으로 분열되어 소왕국들을 이루며 명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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