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의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의 강제 이주는 1937년 봄에 불어닥친 새로운 숙청과 함께 시작되었다.  1937년의 숙청은 3월 3일 스탈린이 볼세비키당 중앙 위원회에 한 보고인 ‘당 사업의 부진과 트로츠키 및 다른 양면 주의자들을 청산할 방법에 대하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문서는 소련이 자본주의 적들로부터 포위되어 있고, 소련 내에는 외국의 스파이들이 가득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강제 이주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1937년 8월 21일이다.  이 날 열린 소련 인민 위원회와 소연방 공산당은 ‘극동 지방 국경 부근 구역에서 조선인 거주민을 이주시키는 문제에 관하여’라는 결의문(No. 1428-326cc)을 채택하였고, 이는 스탈린(Сталин)과 몰로토프(Молотов)에 의하여 서명되었다.

이 결의문의 주요 내용은 원동 지방에 일본 정보원들이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극동 지방의 모든 한인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으로 이주시키며, 이를 1938년 1월 1일까지 완료한다는 것이었다.  강제 이주의 책임자인 예조프는 1937년 9월 21일자로 1차 이주가 완료되었는데, 카자흐로 21,296명, 우즈벡으로 30,003명이 이주되었고, 총 10,369가구 51,299명이라고 보고하였다.  예조프는 다시 1937년 10월 25일에 한인 이주 사업이 완결되었다고 보고하였는데, 총 124대의 수송 열차로 36,442가구 171,781명이 이송되었으며, 우즈벡으로 16,272가구 76,525명, 카자흐로는 20,170가구 95,256명이 이주되었다고 보고하였다.  당시 한인 이주의 총 책임자였던 내무성 극동분국 총책임자인 류슈코프(Лушков, Liushkov)에 의하면, 강제로 이주된 한인이 18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강제 이주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고 행해진 것이 아니었으며, 교통편도 결코 편안한 여행이 아니었다.  먹을 것이 전혀 공급되지 않았고, 열차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행중에 홍역이 발생하여 아이들의 사망률이 60%를 상회하였다고 한다.  또한 가족들이 여러 열차로 흩어져 이산 가족도 다수 발생하였다.  또한 하바로프스크 근처 베리노(Верино, Verino)역에서 505호 열차가 전복된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사고로 인한 사망자들이 다수 발생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도착한 곳도 결코 그들이 생존하기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갔다.  결국 이 시기에 수많은 한인들이 희생되었으며 이에 대하여는 아직도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소비에트 당국은 극동의 한인들을 모두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데 만족하지 않고, 한인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을 재판없이 처형하였는데, 18만 정도의 한인 사회에서 2,500여명이 처형을 당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사회적, 정치적인 핍박이 자행되었으며, 여러 활동들은 극단적인 제약을 받았다.

원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을 왜 중앙 아시아 지역에, 그것도 1937년에 강제로 추방하였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1937년 7월 29일자 “프라우다(Правда)”지에 실려 있다.  “일본 비밀 정보부의 파괴적 행위”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일본은 불교 승려나 어민 또는 한인이나 중국인으로 가장하여 국경지대와 연해주 내에서 소련에게 불리한 파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와 함께 스탈린은 극동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항일 운동이 일본이 대소 선전 포고를 하는 구실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강제 이주를 당한 것은 한인만이 아니었다.  이른바 적성(敵性) 민족으로 낙인찍힌 여러 소수 민족 들도 차례로 강제 이주를 당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인간 쓰레기장’이라 일컬어지던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한민족의 강제 이주 이후에 같은 방법으로 이주를 당한 민족들은 크리미안 타타르족(Crimean Tartar), 체첸족(Chechen), 리투아니아족(Lithuania), 칼무크족(Kalmik), 인구슈족(Engush), 그리고 독일족 등이 있다.  이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진 경우도 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민족 이동의 효시가 한인들의 이주였다는 것이고, 한인의 강제 이주에서 자신감을 얻은 소련 정부는 다른 민족들을 집단적으로 그 원래의 거주지에서 이주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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