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우즈벡版 ‘5월 광주’

2005.05.18 01:18

정근태 조회 수:4281 추천:37


‘5월 광주’의 비극이 25년 만에 중앙아시아에서 재연된 것인가.
우즈베키스탄의 반정부 시위대 유혈진압 과정이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면서 전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안디잔을 제외한 우즈벡 국민들은 정부의 철저한 언론통제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안디잔 인근 다른 도시에서도 시위대 200명이 정부군의 발포로 숨졌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우즈벡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속속 드러나는 안디잔의 참상=안디잔의 인권단체 관계자인 루스탐 이스카코프는 16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3일의 시위 진압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스카코프는 “아침 무렵 시민 800여명이 안디잔 중앙광장에 모이자 곧 군인 2,000명이 도착했다”면서 “오후 1시쯤 발포가 시작됐는데, 사람들이 사격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광장 근처의 학교에도 350명 가량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여성과 10~16세 사이 청소년들이었다. 하지만 특수부대는 이들을 조준사격했다. 이스카코프는 “군인들이 팔·다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 민간인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며 몸서리쳤다.
외신은 군인들이 시신까지 확인사살 했으며, 시내 곳곳에서 흙으로 혈흔을 덮은 흔적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안디잔 중앙광장 등에는 장갑차 15대가 비상경계를 펴고 있으며, 도심으로 통하는 도로도 완전히 차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우즈벡 인권단체 관계자인 사이드자혼 제이나빗디노프의 말을 인용, “지난 14일 안디잔으로부터 30㎞ 떨어진 파크타바드에서도 약 200명의 시민이 희생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지난 13일 이후 정부군 총격으로 숨진 시민은 모두 700여명으로 추산된다”며 “수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번 사태는 1989년 중국 톈안먼 사건 이후 정부에 의한 최악의 유혈 참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국경도시인 코라수프에서 시민 5,000여명이 시청과 경찰서 등 관공서를 장악하는 등 시위가 다른 도시로 확산되는 양상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정부는 발뺌, 언론은 외면=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우즈벡에서 명백한 인권유린 사태가 발생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우즈벡 정부는 발포사실을 부인하면서 “상황은 정상화됐으며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즈벡 내무부는 16일 “이번 시위로 70명이 사망하고 2,000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보도된 희생자 숫자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다.
국영TV와 라디오는 시위대를 비난하는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기자회견만 반복해 방송할 뿐 참상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BBC와 CNN 등 서방 방송들은 송출이 차단됐다.
한편 우즈벡인의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접경국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이들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AP통신이 16일 전했다. 키르기스 국경수비대는 15일 우즈벡인 150명의 입국을 거부했으며, 키르기스 내에 머물고 있는 우즈벡인 약 560명의 본국 송환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아기자 makim@kyunghyang.com〉
(경향신문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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