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 유럽

2006.12.19 07:54

정근태 조회 수:3899 추천:39




1453년 오스만제국이 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비잔틴이 해협을 봉쇄하자 메메트 2세는 ‘함대 육상 수송작전’을 펼쳤다. 바닷가에 기름을 칠한 통나무를 깔고 그 위에 배를 얹어 병사와 소들이 끌게 했다. 한밤중에 산을 넘어 해협으로 들어온 70 여 척의 배를 보고 비잔틴 병사들은 전의를 잃었다.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됐고 비잔틴제국은 멸망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슬람 도시 이스탄불이 됐다. 동서양,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가장 자연스럽게 혼합돼 있다는 도시다. 터키는 국토의 96.4%가 아시아에, 3.6%가 유럽에 있다. 유럽에 걸친 부분이 이스탄불 일부 지역이다. 그렇듯 터키인은 몸은 동양에 있지만 마음은 늘 서양을 향해 있었다. 오스만제국 때는 유럽을 점령하며 스스로 유럽인이라 생각했다. 터키공화국도 근대화를 유럽화와 동일시했다.

▶터키의 한국전 참전은 유럽국가들이 주축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가 자유수호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터키의 의지를 인정했던 것이다. 터키는 1만5000명을 한국에 파병해 이 중 741명이 전사했다. 터키의 인명손실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였다. 터키사람들은 요즘도 한국을 ‘칸카르데시(피로 맺은 형제)’, 한국전 참전용사를 ‘코레 가지’라고 부른다.

▶유럽이 되고픈 터키의 꿈이 다시 좌절됐다. EU(유럽연합)가 작년 10월 시작한 터키의 가입협상을 일부 중단키로 했다. 터키가 EU 회원국인 키프로스에 항구와 공항을 모두 개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EU는 “후보국들이 회원국 책무를 충실히 이행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며 “사법개혁과 부패척결 등 후보국들의 개혁 이행 여부를 자주 점검하겠다”고도 했다. 터키를 겨냥한 말이다.

▶EU 전신 EEC(유럽경제공동체)에 준회원국 신청을 한 이래 46년을 기다려온 터키는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2년 전 80%였던 EU 가입 지지율은 36%로 떨어졌다. 반(反)EU 감정까지 일고 있다. 한때 유럽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터키가 유럽이 만든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해 자존심 상해하고 있다. 유럽엔 터키의 열의와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터키가 이슬람국가여서 따돌린다”는 터키인의 푸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강인선 · 논설위원 insun@chosun.com
입력 : 2006.12.18 18:58 / 수정 : 2006.12.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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