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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26-27)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나은 것은 근심을 떨쳐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는 에바브로디도를 걱정하는 빌립보 교인들의 근심이요,

그 다음은 자신을 위해 염려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누가 될까봐 근심하는 에바브로디도의 근심이요,

셋째로는 자신을 돕기 위해 왔다가 큰 병을 앓게된 에바브로디도 때문에 근심하는 바울의 근심이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근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바브로디도가 속히 나을 것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근심했다는 것은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가 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에바브로디도의 아름다운 신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항상 남을 생각하고 걱정해 주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성도간의 사랑과 우정이 듬뿍 담겨있는 정감어린 말씀이 아닙니까?

빌립보교인들이 바울을 인하여 근심하고 있는 그런 와중에,

자기까지 병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빌립보교인들의 근심을 더 가중시켰다는 것 때문에,

에바브로디도는 더 근심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의 병든 사실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알려진 사실에 매우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삶이 남의 도움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지,

남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을 품고 사십시다.

 

바울도 근심했습니다.

에바브로 디도의 병은 바울에게도 큰 근심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지극한 마음 때문이지요.

엘렌화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에 헌신하고 큰 어려움 가운데서 그 사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슬픔의 고통을 몸소 겪으신다. 그러므로 용기와 믿음을 얻도록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자. 주님께서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만물을 통치하신다. 현명하지 못한 자들이 나타나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자 충고할 것이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항상 그분을 신뢰하도록 하자 그분은 우리의 도움이 되실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때때로 크게 당황한다. 그러나 나는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햇빛이 나의 생애에 스며들도록 노력할 것이다.”(서신 127. 1903)

 

그들의 그러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첫째는 에바브로디도의 죽음을 무릅쓴 헌신,

둘째는 그를 사랑하여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던 바울과 빌립보교인들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치료해 주심으로 그들의 근심을 덜어 주셨습니다.

성도간의 중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가 걱정해주고 내 일처럼 가슴아파하며 기도해 줄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겠습니까?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단순히 하나님의 일꾼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확신 이상을 바울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세 악화가 빌립보 교인들을 엄청난 좌절과 실의에 빠지게 될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바울이 안고 있던 이중의 근심을 해결해 주었던 것이죠.

 

이 이야기는 전부 사랑에 기초한 이야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관계 속에 함께 들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