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죽음 후에 대한 인식

2015.01.06 16:12

정근태 조회 수: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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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빌립보서 1:22-23절에서 그의 고민을 호소합니다.

그가 둘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

 

그러나, 사실 사도 바울만이 이런 두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둘 사이에 끼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을까요?

 

그의 고민은 세상을 떠나는 것과, 살아남는 것 사이에 그가 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좀 달랐습니다.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얼핏 보면 바울은 사람이 죽으면 즉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바울이 죽음의 상태를 예수와 함께 있게 되는 상태로 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이 선호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긴 잠을 잔 후에 그가 최초로 의식하게 되는 일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면전에 있다는 사실일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 문장은 죽음의 시간과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그 부활의 시간 사이에 다른 어떠한 일도 그가 느끼지 못하는 수면 상태에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말이죠.

바울은 육신의 짐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아침까지 그의 수고를 쉬고,

이제 그가 눈을 뜨면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는 그 때,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아침에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영국의 회의론자인 토마스 홉즈는 그의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고 있는 저 세상이 무섭다. 저 세상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인지도 모르나 이 마지막 어두움 속으로 그냥 덥석 뛰어들어가는 것 같다.”

 

바울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그는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고백합니다.

바울은 죽음 후에 새로운 삶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아버지의 집이 그가 죽은 후에 처음으로 만나게 될 곳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그 곳은 돈이나, 세상의 명예나 권세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식으로나 세상의 학문의 힘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 곳은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맺은 이들이 가는 곳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는 곳,

그 곳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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