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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세기 21:2)

 

인간의 모든 육체적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해 버린 백 세의 노년, 그 삭막한 시간의 끝자락에서 거룩한 생명의 역사가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하여 몇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실 일이 전혀 없으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백 세가 된 늙은 아브라함과 태의 문이 굳게 닫혀버린 사라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간의 한계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로막을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예레미야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32:17)라고 뜨겁게 고백하였습니다.

천지를 말씀 한마디와 크신 팔로 창조하신 그 권능의 하나님 앞에서는, 늙은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또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섭리의 하나일 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선포하신 모든 언약을 반드시 정하신 때에 이루어 내십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4:4)"는 말씀처럼, 주님은 구속사의 모든 순간을 정밀하게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가장 완벽한 때를 정하시고, 그 거룩한 때를 위하여 온 세상의 역사와 환경을 치밀하게 준비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의 작고 낮은 말구유에 친히 찾아오신 이유는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아버지의 신실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참혹한 치욕과 부끄러움을 끝내 개의치 아니하시고 참아내신 까닭 또한, 사망의 그늘에 앉은 연약한 우리를 향한 사랑의 약속을 온전히 완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오늘날 주님과 맺은 거룩한 언약과 맹세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릎 꿇고 눈물로 드렸던 서원과 결단을 결코 잊지 아니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손길로 그 약속들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모든 환경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이름을 친히 걸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흔들리지만, 자신의 거룩한 명예를 거신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넷째로, 늙은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삭이라는 아들을 품에 안은 사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입니다.

아브라함이 정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걸어온 그 길고 고단했던 여정은, 사실 자신이 밟고 설 땅을 얻기 위한 세속적인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긴 나그네 길은 장차 태어날 아들과, 그 아들로 말미암아 번성하게 될 영적 자손들이 유업으로 받게 될 거룩한 약속의 땅을 향한 순종의 여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참된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실 귀한 계획과 일들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께서 베풀어 주실 은혜를 겸손히 기다리는 맑은 자세로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낼 때, 주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감추어 두신 찬란한 섭리를 남김없이 이루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때와 시간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근원을 확인하는 심오한 의미를 지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헛된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사의 '시간'과 운명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의 때를 우리의 유일한 언약의 닻이자 존재의 참된 근거로 삼고 있는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조급한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묵묵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광스러운 시간표를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아브라함이 오랜 세월 끝에 웃음의 아들 이삭을 맞이하였듯이, 우리는 마침내 만유를 새롭게 하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시간을 굳건한 소망 중에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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