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를 살피시는 하나님

2026.08.01 16:02

정근태 조회 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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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창세기 21:1)

 

이 구절에서 우리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는 단어는 바로 하나님께서 사라를 '돌보셨다'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이 단어는 '파카드(Paqad,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단순히 멀리서 바라보는 것을 넘어 '방문하다', '보살피다', '주목하여 찾아오시다'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세 오경을 살펴보면 이 '파카드'라는 단어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하게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11절에서는 약속을 기억하고 찾아오시는 '권고하심'으로 쓰였고,

출애굽기 431절에서는 고통받는 백성을 눈여겨보시는 '감찰하심'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234절에서는 죄에 대해 찾아오시는 '보응하심'으로,

민수기 1418절에서는 그 결과가 '이르게 하심'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영문 성경(NIV)에서는 이 단어를 "be gracious to(~에게 은혜를 베푸시다)"라고 번역하여,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찾아오신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사라를 직접 찾아오셨고, 그녀의 삶에 거룩하게 방문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삶이나 특정 장소를 '방문'하신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고 결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셔서 방문하시는 그 순간에는 반드시 위대한 일과 거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악이 가득한 곳에는 공의로운 심판으로 임하시고, 절망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는 방문이 됩니다.

 

재림교 성경주석(SDABC)에 따르면, 여호와의 권고하심, 곧 방문하심에는 두 가지 신성한 목적이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째는 불의와 죄악에 대해 거룩한 심판으로 임하시는 방문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비할 데 없는 은혜와 구원을 베풀기 위해 오시는 방문입니다.

 

사라에게 이루어진 방문은 인간의 모든 소망과 가능성이 끊어진 절망의 자리에서 찾아온, 극적이면서도 온전한 은혜의 방문이었습니다.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깊은 한계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희망은 사라졌으며, 약속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를 찾아오시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녀의 삶에 발걸음을 옮기시어 방문하셨을 때, 불가능해 보였던 약속은 생명과 기쁨의 현실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어루만지시고 방문해 주시는 '파카드'의 은혜를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감찰하시고 방문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 삶의 세밀한 신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의 방문은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으며, 반드시 주님의 뜻과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내는 능력이 됩니다.

오늘도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내 삶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실 여호와 하나님의 성실한 방문을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며, 기다리는 자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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