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4 22:41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창세기 19:30-38)
롯은 본래 아브라함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동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등 돌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삶은 신앙의 출발이 좋았다고 해서 그 끝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롯은 어쩌다가 산 속 어두운 굴에서 두 딸과 함께 숨어 사는 처지가 되었을까요.
그 답은 창세기 13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많아져 한 땅에 함께 거하기 어려워졌을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선택할 기회를 양보하였습니다.
그때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고, 그 땅이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물이 넉넉함을 보고 그곳을 택하였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 떠나니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들의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롯의 비극은 그가 악한 마음을 품고 소돔으로 간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눈에 가장 유익해 보이는 곳을 따라갔을 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조 앙겔마이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단지 맨 처음에 그의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른 것은 간단한 문제였다. 아내와 자녀들은 좀 더 자주 소돔성에 드나들 수 있었다. 그 후 그들은 소돔성의 안락, 오락, 사치 등에 이끌려 성 안의 집을 사게 되었다. 롯은 좋은 의도로 그 곳에 이주하였다. 즉 그는 악에서부터 완전히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하였고 자기 가족들도 자기를 따르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일이 그대로 되지 않았다. 소돔성의 영향이 그의 가족만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점차적으로 은연중에 그의 분발력은 무디어졌고 그의 결단력은 약했졌다.”
흥미로운 점은, 롯이 처음에 그 땅으로 이주할 때에는 결코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과 가족을 악에서 보호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의도로 시작한 선택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눈의 판단을 따른 것이었다면, 결국은 서서히 그의 결단력을 무디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잰 S.다우워드도 이렇게 말합니다.
“소돔을 향해 장막을 칠 때에는 늘 비극이 따른다. 이러한 결정은 이기심에서 나오며, 그 결과는 엄청난 죄와의 영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결정은 하나같이 파멸을 초래한다.”
그러한 결정의 뿌리에는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열매는 죄와 타협하는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언 14:12)
롯이 걸어간 길이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자기 눈에는 가장 좋아 보이는 길이었으나, 그 끝은 산 속의 캄캄한 굴이었습니다.
소돔에서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도 아닙니다.
훗날 소돔이 주변 왕들과의 전쟁에 휘말렸을 때, 롯은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좋아 보이던 그 성읍에서의 삶도, 실상은 고난과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땅을 떠나지 못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순간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붙잡아야 할 기준은 “내 눈에 보기에”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여야 합니다.
선과 악은 저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점점 더 깊이 끌려들어가게 됩니다.
롯의 인생이 바로 그 힘에 이끌려간 인생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소돔 위에 임하려 할 때, 천사들이 롯의 손을 붙잡아 그 성에서 이끌어 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롯이 오랜 세월 소돔에서 살면서도 그의 삶이 다른 이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감화력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소돔을 떠난 사람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뿐이었습니다.
탈출의 순간에도 롯의 우유부단함은 계속됩니다.
천사는 분명히 산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보존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롯은 산까지 가다가는 재앙을 만나 죽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였고, 대신 가까이 있는 작은 성 소알로 피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는 그 성이 작으니 자신이 그곳으로 도망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으리라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롯의 요청까지도 들어주셔서, 소알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소알에 이른 롯은, 그 성에 거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됩니다.
소알 역시 소돔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죄악의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서도 안심하지 못한 채, 그는 결국 두 딸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굴에 거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허버트 키슬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사상이나 교리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애 가운데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로 따르기를 원하시는 그러한 생활 방식을 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롯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삶의 방향을 자기 눈의 판단에 맡겨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산 속의 캄캄한 굴이었습니다.
조 앙겔마이어스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위기가 왔고 그는 머뭇거리다가 구실을 붙이고 드디어 합리화시켰다. 그가 피난을 떠나 드디어 산 속의 한 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마도 자기의 과거를 되돌아다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 때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겠는가? …그가 비참하게 아내를 잃고 정혼한 사위들을 잃은 것, 그리고 미혼 딸들과의 관계로 초래된 수치 등은 그가 소돔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그 순간 롯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을까요.
아내를 잃은 비참함과, 정혼한 사위들을 잃은 상실감과, 미혼의 두 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수치스러운 사건까지, 이 모든 것이 그가 오랜 세월 소돔에서 살아온 결과였다는 사실을 그는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들이 바로 모압과 벤암미였고, 이들은 훗날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두 민족은 훗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시험에 빠뜨리는 존재로 등장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오랜 세월, 얼마나 넓은 범위에 걸쳐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저는 이 대목에서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잘못된 선택과, 죄의 매력에 쉽게 이끌려가는 우리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 결국 롯을 산 위의 굴로 이끌었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내미는 매력은 처음에는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끝은 결국 어둡고 캄캄한 굴과 같은 자리일 뿐입니다.
롯의 생애는 우리에게 슬픈 거울이 되어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는 아직 방향을 바꿀 기회가 남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내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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