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15:24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세기 17:17-18)
백발이 성성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웃음 속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요? 아마도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솔직한 의구심이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했지만,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백 세의 나이, 구십 세의 아내 사라... 이 모든 현실 앞에서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건 불가능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 이미 이스마엘이 있지 않습니까? 이 아이를 통해 약속을 이루어 주세요."
얼마나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제안입니까? 이미 있는 아들을 통해 약속을 성취하시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 아닌가요? 아브라함의 이 제안은 우리가 일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19)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현실적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시고, 당신의 원래 계획을 고수하셨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그 길을 통해서 말입니다.
잠시 멈춰서 생각해봅시다. 상식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정의로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 것"입니다. 즉, 상식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집합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식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혹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제한된 경험과 이해 범위 안에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을 마치 우리처럼 많은 제약과 한계를 가진 분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인간에게는 비상식인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지극히 상식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구십 세의 사라를 통해 아이를 낳게 하시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요? 바다를 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께서 말입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제한된 경험과 좁은 시각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식은 다릅니다. 하나님께는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상식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지극히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신중하게, 책임감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몰상식한 행동이나 무모한 결정이 결코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상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상식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몰상식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앞에도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들, 소망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웃음이 나올 수도 있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식입니다.
우리의 제한된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의심의 웃음이었을 수도 있고, 놀라움의 웃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의심하고,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넘어서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상식이니까요.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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