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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창세기 15:10-11)

 

내가 어떻게 믿습니까?”라는 아브람의 대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소, 염소, ,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가져오게 하십니다.

바로 후일 모세에 의하여 제사에 사용될 동물들로 명시된 동물들이지요.

그리고 그 동물들을 쪼개게 하십니다.

쪼갰다는 표현은 몸을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좌우를 분리해 놓았다는 말입니다.

, 새들은 쪼개지 않았습니다.

새들은 너무 작아서 후일에도 쪼개지 않고 통째로 번제를 드렸구요(1:14-17),

아마도 두 마리였으니 좌우로 한 마리씩 놓았을 수도 있구요,

 

아브람은 이러한 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의식은 고대 메소포타미야 지역에서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한 후에,

이를 확증하기 위해 행하던 보편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식은 이 약속이 깨어진다면 이 동물들처럼 죽을 것을 각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한 마리, 두 마리의 동물을 사용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증해 주시기 위하여 모든 제사에 사용될 동물의 종류를 동원하십니다.

물론 이렇게 여러 동물들을 이 맹세에 사용하는 것은 그 약속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면으로는 그의 자손들을 하늘로 이끄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어떤 희생을 겪으실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동물들을 잡아 놓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체의 냄새를 맡은 솔개가 배를 채우러 내려오면,

아브람은 그 솔개를 쫓았습니다.

한두번이 아니었겠지요?

계속 달려들는 솔개를 쫓아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이제 무슨 일을 더 해야 하나?’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당시의 관습대로 약속의 두 주체가 그 쪼개놓은 동물 가운데로 지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은 오실 리가 없고, 나 혼자라도 지나가야 하나?’ 라고 생각했을까요?

혹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뭐라 말씀하실지 기다리고만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도 임하지 않는 시간,

그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어떠한 행동을 하려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는 솔개를 쫓아내면서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실 때까지, 이 시간은 그의 인내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