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 우즈베키스탄 대선 <上>
16년 독재 연장 위해 암묵적 지지 강요
“반대표 던지면 가족 피해… 찍을 수밖에”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권경복 특파원  

23일 새벽부터 눈이 내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하늘은 종일 잿빛으로 낮게 깔렸다. 이 하늘이 이날 대선 투표에 나선 유권자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듯했다. 시내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156호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들에게 선거에 대해 묻자 모두들 무뚝뚝한 표정에 “니치보 니 마구 스카자치(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만 했다. 간신히 입을 뗀 택시 운전기사 루스탐(Rustam·22)은 “이슬람 카리모프(Karimov)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정부가 어떻게 아는지 가족들이 해(害)를 당한다”고 했지만 함께 있던 어머니 굴자몰(Gulzamol·45)은 주변을 살피며 곧 ‘이지크 모이 브라크 모이(입 조심해)!’라며 아들의 소매를 끌어 갔다.

우즈베키스탄이 23일 ‘이상한’ 대선(大選)을 실시했다. 후보는 1989년 공산당 서기장 시절부터 집권 18년째인 이슬람 카리모프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4명. 그런데 일반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카리모프의 ‘경쟁’ 후보들은 모두 “카리모프의 괄목할 만한 업적을 중시하고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 23일 치러진 우즈베키스탄 대선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이슬람 카리모프 현 대통령(지난 8월 자료 사진).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이후 두 번 연속 대통령을 지낸 카리모프는 이번에 3선을 앞두고 있다. /AP뉴시스관공서 입구와 버스 정류장들엔 ‘모두 투표에 참여하자’는 구호가 붙었지만 정작 후보 4명의 선거 벽보는 일부 상점의 쇼윈도에서나 볼 수 있다. TV 토론이나 광고 방송, 거리 유세는 아예 없다. 거리에서 만난 유권자들 대부분의 반응은 “평균 월급여가 11만숨(som·약 8만8000원)으로 먹고살기도 힘들다” “선거일과 카리모프 대통령의 이름만 알면 된다”는 식이었다. 선거일 전날 타슈켄트를 동서로 가르는 ‘아미르테무르’ 거리엔 녹색 제복 차림의 경찰관들이 ‘질서 확립’ 차원에서 3~5명씩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시민들은 2주 전부터 “20m당 1명꼴로 경찰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20대 직장인 샤밀 샤밀(Shamil)은 후보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에 22일 아미르테무르 거리의 한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카리모프를 뺀 나머지 3명의 후보도 모두 친(親)카리모프 계열이고, 4개의 국영 TV 채널이 모두 ‘카리모프가 낙선하면 다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에서 내전(內戰)이 발발한다’고 하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당의 인터넷 웹사이트 주소를 입력하자 ‘page not found(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라는 메시지만 떴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하는 선거”라고 불만을 터뜨린 샤밀은 다음날 투표를 포기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이 우즈베키스탄 민주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어쨌거나 여성 후보를 포함해 4명이나 출마한 선거다. 그러나 사람들은 1인 장기 집권하는 카리모프가 곧 ‘종신(終身) 대통령’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거리엔 ‘카리모프공화국’이라는 비아냥과 정치적 무관심, 실망이 팽배했다. 상인 자파르(Zafar)는 “다른 사람이 대통령 되면 독재와 부패가 또다시 새롭게 극성을 부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선거감시단의 일원으로 타슈켄트에 온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억압하고 국민들은 실망뿐인 이 선거가 허탈하다”며 “우즈베키스탄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다”고 했다. 이날 오후 1시 중앙선관위는 “투표가 공정하게 치러지고 있다”며 “각국에서 온 100여명의 선거감시단이 ‘선거 절차에 아무 문제없다고 평가했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입력 : 2007.12.2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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