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부국 카자흐스탄의 신음

2007.10.29 08:17

정근태 조회 수:5830 추천:37



[매일 경제 신문에 난 카자흐스탄 기사입니다.]

식료품값 며칠새 4배폭등…대출금리 껑충 아파트 매물 쏟아져
  

카자흐스탄 수도인 아스타나는 물가 폭등, 금융 불안으로 위기에 처했을 것이라는 외부 시각과 달리 겉으로 보기엔 평온했다.
여전히 시내 이곳저곳에서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 세워진 타워크레인이 돌아가고 있다. 아스타나 시내에만 건설현장이 800여 곳에 달한다. 도시 전역이 타워크레인 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여파가 번지면서 건설현장 활기는 다소 떨어진 듯하다. 라이터 모양으로 생긴 카자흐스탄 교통청 건물은 두세 차례 불이 나 보수공사에 들어갔지만 1년 가까이 끌면서 방치돼 불안한 경제상황을 엿보게 한다.

◆ `설탕ㆍ소금ㆍ기름 없음` 팻말도 =

카자흐스탄에서 상황이 더 심각한 곳은 물가가 폭등한 아스타나 북쪽 도시 콕체타프다. 이곳 식료품 가게마다 `설탕ㆍ소금ㆍ기름 없음`이란 팻말이 걸려 있다.
시민들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밀가루와 마카로니 등을 사들이는 통에 식료품 가격도 한꺼번에 폭등했다.
현지 식료품 판매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탕 1㎏에 90~100탱게(700~800원)였는데 설탕이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몇 배나 올랐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곳에선 설탕이 400탱게, 식물성 기름이 600탱게에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 팔리는 가격보다도 두 배가량 비싼 셈이다. 상인들은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다리며 설탕은 물론 식물성 기름과 소금 등을 팔지 않겠다고 버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쿠스타나이 지방정부는 "식료품 판매업자가 10일 안에 가격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쿠스타나이 지역 경계를 폐쇄할 것"이라고 상인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수도인 아스타나, 경제중심지인 알마티 등에서도 품귀까진 아니지만 서민용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스타나에서 사업을 하는 A씨는 "밀 부족으로 밀가루 가격이 2~3배 뛰고 빵값도 많이 올랐다"며 "카자흐스탄은 기본적으로 물가가 연간 10%가량 오르는데 올해는 더욱 심하다"고 염려했다.
10월에는 전기ㆍ난방비 등이 20% 인상될 예정이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조짐이다.
물가 불안이 이처럼 심해지면서 지난 20일 아스타나에서는 카림 마시모프 총리 주재로 긴급 각료회의가 소집됐다. 이날 회의는 오전부터 시작돼 점심시간을 넘기며 계속 이어졌다. 총리ㆍ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의 모든 대외일정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6시께엔 각료회의 후속 조치를 위해 아스타나 시정부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릴레이 회의를 벌였다.

  

◆ 대출금리 3~4%포인트 인상 =

카자흐스탄에선 물가 폭등 이상으로 시민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게 또 있다. 바로 금융 불안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여파가 유럽을 거쳐 카자흐스탄까지 밀려 들어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첫 진출한 한국 건설업체 동일하이빌 현지 근무자인 민만준 씨는 "기존 아파트 거래가 거의 막히고 신규 분양도 힘들어지면서 자금력이 달리는 현지 건설업체 일부가 공사를 중단하거나 시공을 늦추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 건설업체 2위인 쿠아트(KUAT)가 그랜드 아스타나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아파트 분양률이 낮아 최근 부도를 내고 공사를 중단했다.
알마티에 거주하는 B씨는 "매도호가는 30% 이상 떨어졌지만 추가 가격 하락을 막으려는 부동산 개발업자와 투자자들의 매물 줄이기에 힘입어 가격 하락 폭이 그나마 좀 줄어 20% 안팎"이라며 "가격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은행도 100개에서 30개로 줄어 =

카자흐스탄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C씨는 "90년대 초반 한때 100여 개에 달했던 카자흐스탄 내 은행이 30여 개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은행 구조조정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전부터 시작됐으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금융 구조조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상돈 국민은행 알마티지점장은 "현재 모기지 대출금리가 16~20%에 달한다"며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3~4%포인트나 치솟았다"고 전했다.
카자흐스탄은 예금이 많지 않아 해외 차입에 의존해 경제개발을 하고 있다. 결국 국제금융시장이 좋아지면 더 악화되진 않겠지만 반대로 간다면 위험은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던 한국 건설업체들도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이곳에는 중견 건설업체를 비롯해 시행사 등 30여 개 업체가 진출했으나 일부는 한국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철수한 곳도 나타나고 있다.

◆ 건설사 구조조정으로 기회 될 수도 =

카자흐스탄 정부는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은행 군살빼기를 독려하면서 한편으론 4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성해 지원에 나섰다.
김인 동일하이빌 카자흐스탄 현지법인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여파로 이곳에서도 부실 군소업체들이 정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김 법인장은 "건설업체 정리가 진행되면서 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어 오히려 동일 같은 건실한 업체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스타나ㆍ알마티(카자흐스탄) = 장종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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