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결혼’으로 신음하는 키르기스 여성들 세상만사(世上萬事)

2007.03.23 18:23

연합뉴스 조회 수:5714 추천:201


(알마티=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지난해 9월 어느날 중앙아시아의 빈국 키르 기스스탄 동부 산악지대의 나린시(市)에서 일단의 술취한 젊은 남성들이 여대생 한 명을 납치했다.
대낮에 길을 가던 여대생 옥사나(21)를 다짜고짜 붙잡아, 몰고온 승용차 뒷좌석 에 밀쳐넣고는 그녀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담을 나눴다.
옥사나는 자신을 납치한 남자 집에 도착한 후 남자의 어머니와 할머니한테서 사 흘동안 결혼하라는 심한 압력에 시달렸다.
결국 결혼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결혼을 거부한다고 해도 사흘간이나 낯선 남자의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키르기스의 풍습상 그녀 는 이미 ‘더럽혀진’ 몸이 돼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뒤늦게 그 남자의 집을 찾아온 그녀의 어머니도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 전체가 불명예를 안게 된다며 납치 결혼을 묵인했다.
그녀는 남편될 사람이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길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구 520만명의 키르기스에선 결혼을 위한 납치행위가 허다하며 남편이 실업자 나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가 많아 아내에 대한 폭력행위도 빈발한 상황이다.
특히 나린시와 인근 지역에선 결혼의 60~80%가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고 AFP 통 신은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9일 전했다.
8일 전세계적으로 엄수된 올해 세계 여성의 날의 주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근절 이었지만, 키르기스 여성의 현실은 이 주제와 동떨어져 있다.
‘악습’ 옹호론자들은 이 풍습이 키르기스의 자랑스런 유목민 전통에 뿌리를 두 고 있다고 밝히지만, 인권단체들은 소련시절 이후 유독 이런 풍습이 널리 퍼졌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악습 근절을 위한 NGO를 설립한 투칸 오룬바예바(여) 나린시립병원 부인과 의사는 “이런 악습은 무엇보다도 가난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소련시절 이후 가난 에 찌들어 남성들이 결혼을 제대로 못하게 됨으로써 악습이 횡행하게 됐다는 것. 문제는 남성들이 악습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근절에 미온적이란 것. 나린 지역 주민들은 여성 납치행위가 ‘더러’ 있지만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다.
나린시에서 4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사는 칼리닌-타쉬바샷(61)은 500명이 채 안되는 자신의 마을에선 매년 3~4명의 젊은 여성들만이 납치당해 결혼하게 된다 고 털어놨다.
개명됐다는 나린시에 사는 남성들의 의식도 시골과 별 차이가 없다.
시내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카라굴 아바라예프는 승객들에게 자신의 납치행위를 자랑삼아 널어 놓고 있다.
그는 “아내를 먼 지역에서 데려왔는데 집으로 오는 동안 계속 울어댔다”며 “하 지만 결국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개명된 세상 에 살고 있는 만큼” 이런 악습이 없어져야 한다고 ‘건성으로’ 덧붙였다.
오룬바예바는 악습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이처럼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가 운영하는 NGO에서 최근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18세 남성은 “만약 내가 한 여성과 ‘짝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로부터 거부당하면 납치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 는가”라고 되물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다른 남성 3명도 악습에 반대하면서도 친구가 이런 식의 결혼 을 하려하면 “의무감에서” 친구의 여성납치를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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