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향력·서방 흡인력 사이 위험한 줄타기

러시아와 크림 자치공화국의 합병절차가 21일 마무리됨에 따라 러시아의 앞마당인 옛소련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러시아가 역내 경제권 통합으로 소련시절의 영화를 꿈꾸는 탓에 크림 사태 후 이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러시아의 국제사회 영향력을 가늠할 잣대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국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중앙아시아의 대표적 친(親)러 국가인 카자흐스탄은 초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대세가 서방으로 기울자 이에 편승하려다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지난 3일 카자흐는 국가 숙원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해 워싱턴에서 미국과 협상을 준비했다. 카자흐는 이미 러시아와 관세동맹(단일경제공동체)을 맺은 터라 카자흐의 WTO 가입논의 시 러시아는 주요 교섭국이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으로 러시아는 협상에서 배제됐다.

사태의 파장은 컸다. 이를 알아챈 러시아는 명백한 "사보타주(악의적 위해행위)"라며 미국을 거세게 비난했다. 결국 카자흐는 협상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더불어 사태 수습을 위해 10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 대통령이 직접 나서 크림 사태와 관련 "카자흐는 러시아의 전략적 동맹이다. 러시아를 이해한다"라며 러시아를 지지했다.

역내 대표적 친서방 노선을 고수하다 지난해 친러로 갈아탄 키르기스스탄은 크림 사태 속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키르기스 외교부는 12일 성명을 통해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더는 우크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야누코비치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국가를 탈출한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러시아의 입장과는 정반대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현재 야누코비치만을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키르기스는 12년간 마나스 미군기지를 자국에 주둔시키며 중앙아시아에서 친서방을 대표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적 지원을 동반한 끈질긴 요구에 작년 마나스 기지의 폐쇄를 결정하며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옛소련 출신 중 탈(脫)러시아에 앞장섰던 우즈베키스탄은 한때 흔들렸던 방황을 끝내고 친서방으로의 길을 다시 택했다.

20여 년째 권좌에 있는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 대통령은 장기집권에 따른 친서방의 압박이 커지자, 올해 1월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과 만나 "러시아는 동맹국이자 전략적 동반자"임을 강조하며 소련권으로의 복귀를 희망했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다급해진 유럽연합(EU)이 세를 불리려고 우즈베크에 손을 내밀자 카리모프는 주저하지 않았다.

EU는 18일 우즈베크와의 경제협력 회의에서 우즈베크에 WTO 가입지원 및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우즈베크는 소련시절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군사ㆍ경제지원을 받으며 역내 2인자로 군림했으나, 1991년 독립과 동시에 러시아어인 키릴 문자를 버리고 라틴어를 도입했다. 이에 더해 2012년에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옛소련 7개국의 군사동맹조직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마저 탈퇴하며 러시아와 선을 그었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투르크멘은 지역적으로는 유럽에 가깝지만, 철권통치 중인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탓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베르디무하메도프는 유럽으로 발을 들였다가 쏟아질지 모를 인권 및 정치탄압에 대한 서방의 비난을 우려하고 있다.

타지크는 아프카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중동 지역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에 가난한 산악국가인 타지크는 정치적 상황보다 러시아와 서방이 제시할 경제적 지원을 저울질 후 몸을 움직일 예정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친서방과 친러를 둘러싼 줄타기는 러시아의 영향력과 서방의 흡인력 사이에서 어디로 기울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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