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에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잃어가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아쉬움이 여운이 되어 남는 기사입니다.

다음은 기사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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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한글과 우리말을 강제로 빼앗긴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같은 핏줄의 다른 민족이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내 뿌리는 한반도’라는 사실만 기억할 뿐 모국의 역사와 문화와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강제이주 2세대인 60∼70대 고려인들 사이에는 아직 그 흔적이 미미하나마 남아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쓰는 말이 ‘한국어’가 아닌 ‘고려인의 말’이라고 했다. 또 스스로를 ‘고려인’ 또는 ‘고려사람’이라고 불렀다.

설과 추석을 제일 큰 명절로 치는 우리와는 달리 고려인들은 단오를 가장 큰 명절로 쳤다.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도 가사를 몰라 부르지 못하는 고려인들이 허다한 상황이다. 탈춤이나 사물놀이 등을 실제로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강제이주와 토착화=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살던 한인(韓人)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한 장의 옛 소련 기밀문건이 1990년대에 비밀 해제됐다. 1937년 8월 21일자로 작성된 이 문건은 극동지역 한인들을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자흐공화국과 우즈벡공화국 등으로 이주시키도록 했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피해 연해주 일대에 정착한 한인들이 외관상 일본인과 구분되지 않는데다 일본을 위해 간첩활동을 할 것을 우려했다. 이 같은 스탈린의 오판으로 한인 17만5000여명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하바롭스크와 이르쿠츠크를 지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고향에서 6000㎞ 떨어진 곳으로 강제 이주됐다.

중앙아시아 사막지대에 버려진 한인들은 한겨울을 움막속에서 버텨내며 특유의 성실함으로 황무지를 개간했고, 잘사는 소수민족으로 성장했다. 한인들 주도로 만든 집단농장은 뽈리따젤, 세베르니마야크, 레닌뿟지, 김병화농장 등 수십곳이다. 특히 김병화는 농장 개간으로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고려인으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박물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지에 토착화되면서 고려인끼리만 결혼하던 과거와는 달리 다른 민족과의 결혼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8일 김병화농장에서 만난 고려인 2세대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주 루라밧시 부시장을 지낸 김 베체슬라브(66)씨는 고려인들이 우리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김씨는 “유치원에서부터 러시아어를 써야했고, 러시아어를 모르면 취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려인들이 우리말을 포기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주 초기만 해도 고려인 집단주거지에는 우리말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옛 소련과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소수민족 융합정책에 따라 고려인 마을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마을 주민의 절반 이상은 우즈베크인이나 타타르인, 카자흐인들로 채워졌다. 점점 한국어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은 독립국가연합(CIS) 12개국 중 가장 많은 23만명이다. 130여 민족으로 구성된 우즈베키스탄은 전체 인구 2760만명 중 우즈베크인이 71.4%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어 러시아(6.3%), 타지크인(4.7%), 카자흐인(3.9%), 카라칼팍인(2.5%), 타타르인(1.5%) 등의 분포를 보인다. 고려인 비중은 0.9%에 불과하다.

김씨는 최근 우즈베키스탄에 불고 있는 한국어 열풍에 대해 ‘일하러 가고 싶은 나라’라는 목적의식 때문으로 풀이했다. 한국이 짧은 기간 급속히 발전하면서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 케이팝(K-POP) 등 한류 바람에 한국어 ‘열공’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현지 전문가들도 이 같은 현상이 모국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1991년 타슈켄트에 한글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허선행 세종한글학교장은 “학생들 중 95%가 넘었던 고려인 비중은 해가 갈수록 줄어 현재는 80% 이하인 상태”라고 전했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김 릴리야(33·여)씨 역시 자신의 13세와 8세인 두 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릴리야씨는 “어렸을 때 집에서 한국말만 쓰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러시아어를 못해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어 자식들은 러시아어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타슈켄트 리자미사범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릴리야씨는 졸업 후 한국어 교사로 강단에 서는 대신 여행사를 차릴 계획이다. 교사의 월급은 미화 100달러 상당에 불과한 반면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여행사를 운영하면 이보다 수십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허 교장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언어뿐 아니라 문화도 접할 수 있어 고려인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활성화되면 점차 민족의 정체성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