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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3

2005.11.24 23:11

정근태 조회 수:616 추천:5




통역하시는 집사님 가족이 비자문제로 2주 예정으로 우즈베키스탄에 가신 날,
우리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항상 무슨 일이든지 통역을 통하여 일들을 처리하던 우리 가족은,
카자흐스탄에 혼자 남겨진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우리 가족만 있는 것도 아니고, 1주전에 도착하여 1000명 선교사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 박지범 군, 사업 계획 차 카자흐스탄에 다니러 3일전에 온 성시우 집사님까지...
6명은 고립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학교에서 받아오는 숙제 등을 할 수 없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캅치가이에는 우리 교회가 있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있지만, 그들과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날 저녁 즈음,,
저는 성집사님을 기다리기 위해 시장 주변에 차를 세우고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약 5분쯤 지났을까, 60세 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시장쪽에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카자흐인인지, 고려인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습니다만,(워낙 한민족과 카자흐 민족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인종적으로 비슷합니다.) 가까이 오심에 따라, 고려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확신하게 된 것은 양 손에 김치를 담기 위한 배추를 세 포기씩 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제 앞을 지나치시는 순간 가볍게 눈 인사를  드렸습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자 할머니는 당황해서 러시아말로 “우리가 아는 사인가? 어디서 봤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러시아말을 못합니다(능숙한 러시아말로...)” 대답하자,, 할머니는, “아 한국 사람이요?”라고 응답해 왔습니다. 사실 고려인들도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무슨 일로 왔는가? 여기에 사는가? 등등...
몇 마디를 함께 건네다가, 할머니께 제안을 했습니다. “할머니 짐이 무거우신 것 같은데, 차에 타시면 댁에 모셔다 드리지요” 몇 번을 거절하시다가 결국은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모셔다 드렸는데, 자꾸 집에 들어와서 차라도 마시고 가라고 잡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시장 앞에서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고, 내일 꼭 오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다음날 오전, 성집사님과, 박선교사와 함께 셋이서 그 댁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는 기다리고 계셨고, 할아버지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깨끗한 집이었습니다. 정말 잘 갖추어져 있고, 여러 가구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집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깔끔하신 성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의 한국어 솜씨도 좋았지만, 할아버지는 한국말을 더 잘하셨습니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가 있었던 1937년의 다음해에 카자흐스탄의 우스토베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우스토베에서 자라고 결혼하고, 이후로는 인근의 딸띄꾸르간에서 생활하며 자녀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엔지니어로, 할머니는 교사로 일을 하시면서, 세 자녀들은 변호사와 의사 등으로 훌륭하게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5년 전 은퇴하시고, 딸띄꾸르간과 알마티의 중간에 있는 캅치가이로 이주를 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 곳 캅치가이에 친구들과 친척들이 여럿 살고 있고, 작은 도시라 공기도 좋고, 호수도 가까이 있는 이 곳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나누시다, 한국어 교재들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어 교재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박 선교사에게 첫 번째 일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러시아어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물론 목적이야 따로 있지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까지 대접받고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과목을 가르치셨습니까?
“러시아어”라는 대답에, 저는 탄성을 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제냐 집사님 댁이 우즈벡에 가신 기간 동안에도 아이들 공부를 도와줄 선생님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제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더 이상 문법과 문학까지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집사님의 말씀에 아이들 러시아어 선생님을 구해야 할 상황이라 그제부터 좋은 러시아어 선생님을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할머니가 러시아어 선생님이었다고 이야기하자, 집사람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하며, 모든 것을 적시에 준비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서로 방문하고, 초대하면서 서로서로 사귀고, 서로의 형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성경에 관심을 보이셔서 박 선교사와 함께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이 할아버지는 이곳 고려인들 중에도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분들 가운데 한분이라 여러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할아버지는 저희 부부와 박선교사를 다른 고려인 아저씨의 회갑연에 초대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캅차가이에 사는 많은 고려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필요한 때에 이 두 분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뿐이라는 고립감을 해소하고(정말 많은 부분에까지 신경을 써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아이들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그 후에 아이들이 이 댁에 다니면서 러시아 문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마침 이곳에 온 박 선교사가 언어를 배우면서 전도의 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멋진 분들을 준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진 설명, 고려인 아저씨의 회갑연에서 : 오른쪽의 한복입은 아주머니는 지난 4월 23일 기사에 언급했던 한국문화 전승에 관심이 많으셔서 우리 교회에 찾아오셨던 아주머니, 그 옆의 할아버지는 위에서 이야기한 김알렉세이 할아버지, 그 반대편의 분홍색 옷을 입고 저희 집사람 옆에 앉으신 분이 한루보브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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