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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2005.10.23 21:52

정근태 조회 수:479 추천:9





안식일 저녁,
일몰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편안한 시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제냐 집사님이었습니다.
“전에 우리교회에 왔던 고려인 아주머니가(전에 기사를 올린 적 있지요?) 전화를 했어요,
내일 고려 할머니들이 모여서 상을 차린다는데, 목사님도 초청한답니다.”
이런 초청을 거절할 수는 없지요.
약속 시간이 되어 사과를 사 들고 고려인 아주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아주머니 댁에는 약 십 여 분의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모여 계셨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저를 이분들께 소개시켜 주시겠다고 부른 것입니다.
뭐, 교회와 선교적 의미는 전혀 없고, 그저 고려인 할머니들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해서 라는 것이죠.
상이 차려지고, 이곳에서는 귀한(무슬림 나라니까요) 돼지고기를 듬성듬성 잘라 넣고 푹 끓인 시래기장물 국이 한 대접씩 나오고,
상추쌈에, 이곳에서는 귀한(바다가 없으니까요, 수입품이죠) 김까지 썰어 놓은 정성이 들어간 상이었습니다.
손수 담근 된장까지 올려진 멋진(!) 상이었습니다.
상이 차려지는 동안 몇몇 분이 더 오셔서 열 댓 명이 모였습니다.
이 얘기, 저 얘기, 다들 서툰, 함경도 사투리가 짙고 러시아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는 소위 “고려말”로 담소를 나누고,
즐거운 식사를 했습니다.
약 25명 정도의 회원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돌아가며 이 집, 저 집에서 모이고, 모일 때마다 15명 남짓 모인다고 합니다.
“고려 노래”도 하고, 세상 살아가는, 자식들과 부대끼고, 손자녀들이 커가는 이야기들로 채워지던 시간이, 한국에서 온 사람 때문에 한국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상을 물리고 다과를 하면서, 역시 노래 시간, 타령과 북한 색이 짙은 가요들, 더불어 한국에도 알려진 “반갑습니다”까지 노래들이 이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온 사람들 노래를 들어야 한다면서 청하시는 할머니들 앞에 앉아서 아리랑, 정선 아리랑, 밀양 아리랑에, 한국풍의 찬미가까지,, 메들리로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그러나, 언젠가 만났던 사람들처럼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사람들,
한 핏줄이기 때문에 느끼는 유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동포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섬기는 캅차가이 교회는 대부분이 러시아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 사역을 행하는 중에도 자기 동포들의 구원을 뜨겁게 갈망했던 것처럼,
동포들의 구원을 이루는 것도 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캅차가이 교회에 동포들이 한 줄을 차지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카자흐스탄 캅차가이 선교지에서 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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