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1일 오전 2시40분경,
일본 오키나와의 슈리성에 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소방차 30대와 소방대원 100여명 벌인 진화작업은 11시간 만에 끝났지만,
슈리성 정전(正殿)은 완전히 소실되고, 그 안에 있던 상당수의 문화재가 훼손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화재 이전의 모습입니다.
슈리성 (首里城 : 수리성)은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류큐(琉球 : 유구) 왕국의 궁전입니다.
오키나와, 그러니까 이전의 류쿠 왕국은 원래 일본이 아닌 독립국이었습니다.
류큐 왕국은 지금으로부터 약 580년전에 성립하여,
약 450년간(1429~1879) 난세이제도에 존재했던 왕국입니다.
그 왕국의 왕이 있던 곳이 바로 슈리성입니다.
1427년에 성을 정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류큐 왕국의 슈리성의 창건 시기는 그 이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성의 기본적인 영역이 완성된 것은 쇼신왕과 쇼세왕의 시대라고 합니다.(1477~1555년)
성은 대략 동서 400m, 남북 200m의 규모로,
내곽과 외곽이 있습니다.
즉 2중 성이지요.
내곽은 우나(御庭)를 중심으로 한 행정 공간,
그 남쪽의 교노우치(京の內)라는 제사 공간,
동쪽의 오우치하라(御內原)라는 거주 공간이 있습니다.
정전, 남전, 북전 등 주요 건물은 내곽에 세워져 있습니다.





작년에 슈리성을 방문했는데,
들어가는 길에 이 성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임을 알리는 표지가 있었습니다.
1933년 일본 정부은 이 성을 국보로 지정했고,
2000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습니다.





성 입구에 있는 소노햔우타키이시몬(園比屋武御嶽石門 ; 원비옥무어옥석문)입니다.
류큐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건조물로,
국왕이 외출할 때 안전을 기원하고,
성지를 순례하는 행사나 최고의 신녀(神女)인 기코에오키미(聞得大君)의 즉위 때에도 먼저 이곳을 참배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형태는 문이지만 사람이 통과하는 문은 아니고,
신에게 기도하는 “예배의 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문의 상부에 걸려 있는 편액에는 1519년(쇼신 왕 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3년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태평양전쟁으로 일부 파괴되어,
1957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수리성의 정문인 칸카이몬(歡會門 ; 환회문)입니다.
'중국에서 온 사자를 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15세기경 건설되어 2차 대전 오키나와 전투 당시 소실되었으나,
1974년 재건되었습니다.
석재 아치 성문 위에 나무로 만들어진 망루가 지어져 있는 구조입니다.
또한 성문 양옆에는 '시사'라고 불리는 액을 막아 준다는 사자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곽의 모습입니다.
복구된 성곽이 너무 새것으로 보입니다.





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사실 슈리 성의 화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류쿠 왕국의 왕위 쟁탈전과 화재로 세 번이나 소실되고 또 재건되었는데요,
최근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성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슈리성은 오키나와에 일본이 침략해서 일본에 병합되기 전까지,
류큐 왕국의 국왕이 거주하던 성이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시인 1945년, 일본군이 수리성에 숨어있어 공격의 목표가 되어 폐허가 되었지요.
어디가나 민폐~
이를 1992년에 이르러 주요 건물을 재건했지요.





계단에 서서 인증 샷~
계단 위에는 즈이센몬(瑞泉門 : 서천문)이 있습니다.
즈이센몬 먼저 본 아치 형태의 석문의 칸카이몬과 달리, 쌍벽의 문 위에 망루가 있습니다.
상서로운 샘이라는 이름은 문 아래, 계단 우측에 용머리 홈통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샘이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이 우물입니다.
이 샘의 물은 왕궁의 음료수로서 사용되었고,
또한 중국 황제의 사자들과 책봉사들이 류큐를 방문했을 때,
매일 이 물을 그 숙소까지 배달했다고 합니다.
이 용의 머리 조각은 류히(龍樋 : 용통)라고 하는데,
1523년에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로코쿠몬(漏刻門 : 누각문)입니다.
‘로코쿠(漏刻)’란 ‘물시계’라는 의미입니다.
문이 만들어진 시기는 15세기경이라고 합니다.
문 위의 망루에 수조를 설치하고, 물이 넘치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각을 측정하면 담당 관리가 이곳에서 북을 치고,
그것을 들은 다른 관리가 아가리노아자나와 이리노아자나 및 우에키몬에서 동시에 큰 종을 쳐서,
성내외에 시각을 알렸다고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1456년 조선의 기록에도 이 ‘로코쿠(漏刻)’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류큐의 그 것은) 우리나라의 것과 똑같다’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정전을 향하여 가는 길에 위의 간카이몬(歓会門)에서부터 4번째 위치에 ‘고후쿠몬(廣福門 : 광복문)’이 있습니다.
문 외벽 상부에 있는 편액에 쓰인 ‘廣福(광복)’이라는 글은 ‘복을 널리 퍼뜨린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은 건물 그 자체가 문의 기능을 하는 “건물 부대형 문”으로,
슈리성 성문의 특징적인 형식 중 하나입니다.
문 서쪽에는 신사 불각을 관리하는 ‘지샤자(寺社座)’,
동쪽에는 호적을 담당하며 재산 분쟁 등을 조정하는 ‘오쿠미자(大与座)’라는 2개의 관청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고후쿠몬은 메이지 시대 말기, 소학교가 만들어지면서 철거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서가 되는 옛날 사진이나 그림으로 그려진 평면 약도, 발굴조사 등의 분석을 바탕으로,
1992년에 목조로 외관 복원이 완성되었습니다. 




고후쿠몬 앞에는 광장이 있고,
그 옆에는 붉은색으로 벽을 칠하고,
붉은색 기와을 얹은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붉은 색들이 칠해진 것을 보면 중국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높은 곳에 왔으니 아래쪽을 내려다봅니다.
슈리성 성곽과 주변의 숲,
그리고 멀리 나하 시내와 바다가 보입니다.





자 이제 본전 앞 마당으로 들어가는 호신몬(奉神門 : 봉신문)입니다.
신을 섬긴다는 의미지요.
슈리성 정전(正殿)이 있는 ‘우나’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입니다.
1562년에는 석조 난간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으니,
문이 세워진 것은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그 후 1754년에 중국 제도를 따라 수리했습니다.
건물은 메이지 말기경에 철거되었지만,
1992년에 외관이 복원되었습니다.
3개의 문 가운데 중앙은 국왕 및 중국에서 온 책봉사 등이 사용했고,
그 외 관리는 양쪽 문으로 입성했다고 합니다.





호신몬 앞에는 스이무이우타키가 있습니다.





스이무이우타키는 류큐 왕국의 왕이 기도를 올리던 슈리성의 문입니다.
류큐 개벽신화의 신이 만든 성지라 전해 내려오는 오랜 역사의 장소입니다.
슈리성의 옛 별칭인 '스이무이'와 예배하는 곳이라는 뜻의 '우타키'를 합성하여 스이무이우타키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류큐 왕국의 가장 오래된 가요집 '오모로사우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대부분 유실되었었으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2019800.JPG

자 이제 호신몬을 지나 정전을 만나러 갑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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