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목화밭 징집… 작년에만 안전사고 등으로 11명 사망… 그 목화로 지폐 만드는 한국 기업·조폐공사는 “직접 책임 없다” 외면

2013년 9월15일 오전 우즈베키스탄의 한 마을 부근 목화밭에서 아미르벡 라크마토브(당시 6세)가 어머니 곁에서 놀고 있었다. 목화밭 강제 노동에 징집된 그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올 수 없었다. 자기 곁에 두는 게 더 안전할 거라 생각해 목화밭에서 놀게 했다. 어느 순간 할당량을 채우느라 정신없던 어머니가 곁을 돌아보자 아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미르벡은 몇 시간 뒤 수확한 목화를 담은 트레일러를 비울 때 발견됐다. 차곡차곡 쌓인 목화더미에서 차갑게 식은 작은 몸 하나가 드러났다. 질식사였다. 아미르벡은 목화에 눌려 숨을 쉬지 못하다 트레일러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하느라 트레일러에 들어간 아들 위로 목화가 쌓이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어머니는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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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배만 불리는 ‘하얀 황금’

우즈벡 목화밭엔 죽음의 기록이 빼곡하다. 지난해에만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주민 11명이 숨졌다. 우즈벡 정부가 목화 경작기·수확기에 강제노동을 시키는 와중에 희생된 이들이다. 사람들은 안전사고로 죽고, 일 후유증으로 죽었다. 살인사건도 벌어지지만 죽으면 그뿐이다. 유족은 정부의 강제적·폐쇄적 운영 때문에 사인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다.

지난해 9월9일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무르리사 라자보바(당시 17세)는 목화밭에서 전기 충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시신을 부검한 뒤 가족에게 돌려보냈다. 하지만 무르리사 부모는 ‘딸이 전기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에르킨보 욜다셰브(당시 16세) 어머니도 목화밭에서 아들을 잃었다. 에르킨보는 지난해 10월21일 밤 목화를 수확한 뒤 돌아와 숙소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 5시에야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는 “아이가 죽은 지 7시간이 지난 후 정부 관계자가 집으로 찾아와 ‘시체 보관소에 있다’는 통보만 하고 달아나듯 떠났다”고 말했다. 에르킨보의 어머니는 “왜 즉시 알리지 않았는지, 시신을 부검한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는지 의문투성이”라고 말했다.

살인도 곧잘 일어난다. 대학생 코짐 오모노브(당시 22세)와 사만다 누마토브(당시 23세)는 지난해 9월16일 아크람 사다토비치 우로브(24)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목화 할당량을 두고 다퉜다. 서로 자기 할당량을 채웠다며 남은 일을 미루려다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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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엔 예외가 없다. 정부는 아픈 사람도 목화밭에 징집한다. 강제노동을 피하는 길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뿐이다. 대리 노동 과정에서도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대학교 3학년 줄피라 아크메도브는 몸이 아파 목화밭에서 일할 수 없었다. 줄피라는 의료 기관에서 “목화밭에서 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증명서를 받아 정부에 제출했지만 거부당했다. 줄피라 어머니는 할당량을 채워줄 사람을 고용했다. 하지만 얼마 뒤 줄피라는 어머니가 고용한 사람의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대리 경작을 해줬지만 돈을 받지 못해 저지른 범행이었다. 지난해 10월4일 간질 발작으로 세상을 떠난 카이룰라 누마토브(31세)는 한 의사에게 고용돼 강제노동을 대신하다 죽었다.

죽음을 불러오는 강제노동은 돈과 직결된다. 우즈벡에서 목화는 ‘하얀 황금’이라 불린다. ‘국부’의 원천이다. 우즈벡은 2013년 기준 세계 목화 6대 생산국이자 5대 수출국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와 농가에 수확 할당량을 배정한다. 지방정부는 할당량을 채우려고 어린이들까지 동원한다. 코튼캠페인, 워크프리는 강제노동을 반대하는 국제 시민단체다. 이들은 우즈벡에서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성인과 아동이 경작기, 수확기에 강제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렇게 생산된 목화를 독점 매입해 국가 소유의 무역회사를 통해 수출한다. 사적으로 목화를 거래하다 걸리면 처벌한다. 목화밭에 다른 작물을 심는 것도 금지한다.

정부가 주민을 강제 동원해 벌인 사업으로 얻는 이득은 연간 최소 10억달러(약 1조원) 규모라고 한다. 목화 사업 수익금은 정부 최고위급 관료들만 쓸 수 있는 ‘특별예산 기금’으로 들어간다. 주민들의 하루 할당량은 40~120㎏, 보수는 1㎏당 150~200숨(cym·우크라이나 화폐단위)이다. 100숨은 한국 돈으로 50원이다. 100㎏의 목화를 따 받는 돈은 5000원인데, 이마저도 이런저런 공제로 못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국제인권단체 “우즈벡 목화 사용말라” 요청

한국은 우즈벡 목화밭에서 나오는 원료로 지폐를 만든다. 1990년대부터 우즈벡에 진출한 대우인터내셔널이 2010년 말 합작투자해 만든 면펄프 사업체 ‘글로벌 콤스코 대우’(GKD)는 2014년 현재 총 3개의 현지 공장을 운영한다. 우즈벡에서 가장 큰 가공회사인 GKD는 대우인터내셔널 지분 35%와 한국조폐공사 지분 65%로 만들어진 합작회사다. GKD는 면 펄프를 생산하고, 조폐공사는 이 면 펄프로 지폐를 만든다. 목화의 ‘파종-재배-수확-유통’의 전 과정을 우즈벡 정부가 관할하고, GKD는 우즈벡 대외경제부에서 원면을 구매해 현지 면방공장에서 가공해 판매한다. 우즈벡인의 눈물이 한국인의 지폐와 옷에 배어 있는 것이다. 국내외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점을 들어 강제노동이 한국기업 및 한국정부와 연결됐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은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다.

2012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조폐공사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소속 윤호중 의원은 “조폐공사가 우즈베키스탄 면화 사업에 현지법인 설립을 통해 투자했으나, 이 산업은 아동착취로 국제적인 악명이 높다. 사업 수익률도 예상보다 낮다.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가 참고인 자격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해 우즈벡 인권 실태를 알리기도 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측은 “공장 안에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일은 없고, 우즈벡 정부가 자국민에게 목화밭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이다.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한국 기업과 정부를 규탄하는 국제 인권단체 목소리는 높아진다. 코튼캠페인은 지난 2년간 유명 글로벌 기업 등에 ‘우즈벡 목화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나이키, H&M, 이케아, C&A 등이 이를 받아들여 자사의 목화 공급망에서 우즈벡을 제외시켰다.

코튼캠페인은 대우인터내셔널에도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우즈벡 목화를 구매하지 말고, 현지에서 인권 모니터링을 수행하라”고 말한다. 코튼캠페인은 “대우인터내셔널의 모기업인 포스코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에 가입해 있다. 또 대우인터내셔널의 모국인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이드라인을 채택한 국가”라며 “대우는 공급망에서 이뤄지는 인권침해를 회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지난 7월11일에는 워크프리,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 활동가 20여명이 서울 중구 대우인터내셔널 본사를 방문해 “우즈벡 강제노동을 막는 데 도움을 달라”는 국제 서명을 전달했다. 서명에는 세계 190여개국 20만여명이 웹사이트에서 참여했다. 이들은 OECD 국내 연락사무소에 진정도 제기할 계획이다.

워크프리의 제이드 브래들리 활동가(30·영국)는 “한국인들은 돈을 쓸 때마다 우즈벡 목화밭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지폐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대우와 한국 정부는 국제노동기구에서 우즈벡에 강제노동이 사라졌다고 확인할 때까지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노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공급 과정에 인권운동가의 감시를 도입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현지 인권실태 조사 중 억류까지 당한 공익법센터 ‘어필’ 김종철 변호사
“20년 독재정권에 인권 최악 수준… 경작·수확기엔 의사와 교사도 징집돼 의료·교육 마비상태”


공익법센터 ‘어필’ 김종철 변호사는 지난해 9월24일부터 약 2주간 우즈베키스탄 현지조사를 다녀왔다. 김 변호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의 강제노동과 인권침해 실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목화밭 부근 학교는 경작기와 수확기 때 일종의 강제수용소로 전락했다. “학교에 가보니 학생은 모두 목화밭으로 갔고, 교실은 침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강제노동에 동원돼 목화밭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었어요.”

우즈벡 정부는 학교가 목화밭에서 가까우면 교실을 개조해 숙소로 쓴다. 여의치 않을 때는 축사를 개조한다. 숙소엔 쥐와 벌레가 돌아다닌다.

김 변호사는 “물도 부족하고 음식도 비위생적이라 강제노동에 동원된 학생들이 대량 식중독에 걸리는 일도 많다”고 했다.

강제노동은 여러 악순환을 불러온다. 강제노동엔 공무원도 징집된다. 우즈벡에선 의사, 교사, 언론인도 공무원에 포함된다. 김 변호사는 “강제노동 기간이 되면 환자들이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동원하지 않는 곳도 교사가 없다 보니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말했다.

우즈벡 인권 상황은 열악하다. 20년 넘게 독재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우즈벡 인권 상황은 북한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현지조사를 할 때 관광객으로 위장했다. 그는 “사복 경찰이 계속 추적해오고, 호텔 위치를 파악했다. 나중에는 1시간 정도 억류를 당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시 우즈벡에 조사하러 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김 변호사는 우즈벡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우즈벡에는 언론 자유도 거의 없고, 인권 운동은 대부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활동가 수도 적어 외부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우즈벡 정부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한 강제노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아이들의 강제노동과 또 다른 사망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 시민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인터넷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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