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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멜라카의 차이나타운 전경.>

 

술탄시대 이슬람
중국·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침공의 기억은
보존되고
서로 섞여
말레이시아의
새 문화자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멜라카는 14세기에 세워진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면서 말라카 해협의 거점 항구도시이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의 안다만 해와 태평양의 남중국 해를 잇는 수로로서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선박 항로 중의 하나이다. 15세기까지 이 도시는 중국 명나라와 대외관계를 하면서 무역과 이슬람교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이뤘을 뿐 언제나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있었다. 1511년 이후 포르투갈, 1641년 이후 네덜란드, 1867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역사는 19세기 후반 중국인의 이주, 1941년 일본의 침공, 1957년 말레이시아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이 도시는 식민지에서 독립에 이르기까지 말라카 술탄국 시대의 이슬람 유적, 이주민들의 유적,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유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팥빙수와 비슷한 에스까장과 쯘돌을 파는 멜라카 차이나타운의 길거리 가게.

술탄국가 시대의 유적으로는 술탄 궁전이 있지만 이주민들의 유적과 시기가 겹치는 것들이 많다. 중국 이주민의 유적에는 명나라 장군 정화가 정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은 쳉훈텡 사원과 삼포통 사원, 인도 이주민의 유적에는 스리 포기아타 비노야기르 무르티 사원 등이 있다. 포르투갈 유적에는 네덜란드의 침략에 대비하여 지은 산티아고 요새, 말라카 술탄국에서 약탈한 보물을 싣고 가다가 침몰한 포르투갈 선박을 복원한 해양박물관이 있다.

네덜란드 유적으로는 도시의 중심에 있는 네덜란드 광장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지은 그리스도 교회, 영국의 침략에 대비해 지은 세인트 본 요새, 말라카의 창건에서 서구 식민도시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의 역사를 전시한 역사박물관이 꼽힌다. 영국 유적에는 '말라카 사교 클럽'을 그대로 보존하여 말레이시아가 독립하기 전까지의 사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독립선언 기념관 등이 있다. 이러한 식민도시의 유적들은 네덜란드 광장을 중심으로 도보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어 여행자들은 한 나절이면 다 둘러보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곳은 역사 유적의 순례지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민족이 공존하다가 새로운 혼종의 문화를 생산해낸 역사적 현장, 차이나타운이 있다. 차이나타운은 원래 네덜란드인의 주거 지역이었지만,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화교들의 집단 주거 지역이 되었다. 그 화교들이 대부분 중국 남부지방에서 왔기 때문에, 이곳은 중국 강남지방 서민들의 전통 가옥들과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좁고 긴 골목길, 곧 룽탕으로 되어 있다.

도시국가로 성립된 14세기로 거슬러 가면, 이곳에서 원주민 말레이인과 이주민 중국인 사이에 융합이 일어났다. 중국 이주민 남성과 말레이 여성이 결혼하여 자손을 낳고 그 후손들에 의해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후손을 페라나칸, 그 문화를 바바 뇨냐라고 한다. 페라나칸은 바바(남성)와 뇨냐(여성)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며, 중국인 바바와 말레인 뇨냐 간의 자손이다. 그 결합은 중국, 말레이시아 문화를 혼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차이나타운에 남아 있다.

그곳에 '더 바바 뇨냐 헤리티지'라는 박물관이 있다. 19세기 후반 대부호였던 페라나칸 찬 첸 슈의 저택과 세간들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시한 박물관이다. 저택의 구조는 중국 전통 가옥의 구조, 곧 사각형으로 된 쓰허위안(사합원)이다. 집 가운데 정원을 두고 방들이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정원과 방 사이, 방과 방 사이는 회랑으로 연결된다. 건물과 담을 적절히 이용하여 사방을 에워싸 외부로는 닫히고 내부로만 열린다. 집 외부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대문이다. 집은 중국 전통 가옥을 그대로 본떠 지었지만, 생활풍습에는 말레이시아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박물관의 건립자 찬 킴 레이는 바바 뇨냐 공동체의 특성을 음식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추천한 카페 1511, 레스토랑 올레 사양과 페라나칸의 음식은 중국 음식과 말레이시아 향료들이 결합된 뇨냐 음식이다.

비싼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지 않고도 뇨냐 음식은 도시 곳곳에서 먹을 수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네덜란드 광장으로 건너는 다리 옆 가판대에서 팔고 있는 에스까장과 쯘돌이 그것이다. 우리 팥빙수라고 할 수 있는 에스까장은 얼음을 갈아 놓고 그 위에 설탕 시럽과 농축 우유, 젤리를 얹어 놓은 것이다. 쯘돌은 갈아 놓은 얼음 위에 설탕 시럽과 코코넛 액을 붓고 다시 초록빛을 띤 국수 토막 같은 것을 넣은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과 말레이시아 간 서로 다른 민족 간의 결합으로 바바 냐뇨 문화, 뇨냐 요리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혼종의 새로운 문화는, '멜라카-물리적 문화적 지속가능성'라는 이름으로 싱가포르 대학교 디자인 환경 연구소와 도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양립할 수 없는 과거를 복원하여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과거는 도시 국가 초기의 이슬람 문화, 중국 이주민의 유교 문화, 인도 이주민의 힌두교 문화, 포르투갈의 가톨릭 문화,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 문화, 영국 성공회 문화들이다. 서로 다른 민족과 그 종교에 관련된 유적을 해체하거나 개조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 복원으로 옛 도시의 물리적 지속가능성이 이어지고, 현 도시의 문화적 지속가능성도 이루어진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복원해 존재하게 함으로써 공존하는 가운데 하나로 결합돼 재창조될 수 있다는 것을 도시의 역사가 증명한다. 혼란스럽고 복잡다단한 우리 사회도 무엇보다 먼저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배낭여행 허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여정 시작

   

말레이시아는 입헌 군주국으로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섬 북부(동말레이시아)로 이루어져 있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태국,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바다에서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배낭여행의 경유지 역할을 한다. 여러 차례 말레이시아를 여행했지만, 필자는 싱가포르에서 말레이 해협을 따라 가다가 반도의 북부에서 국경을 지나 태국에 이르는 코스를 가장 좋아한다. 싱가포르를 출발해 조호르바루, 멜라카, 쿠알라룸푸르, 캐머런 하이랜드, 타만 네가라, 이포, 콸라 캉사르, 페낭(섬), 랑카위(섬)를 거쳐 태국으로 가는 여정이다.

말레이시아는 버스로 네댓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이동하기에 쉽고 편리하다. 국경을 넘는 것도 랑카위에서 페리를 타고 한 두 시간이면 태국 사뚠으로 넘어간다. 이 여정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곳은 멜라카와 페낭의 조지타운을 만난다. 멜라카에서는 다민족과 다문화가 공존하여 뒤섞이면서 창조한 새로운 문화를, 조지타운에서는 동서양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역사를 볼 수 있다. 페낭의 국립공원에서는 도보여행을 하면서 나비농장, 뱀 사원, 열대 식물원을 관람할 수 있다.

캐머런 하이랜드에서는 고원지대를 다니면서 장미 농원, 딸기 농원, 선인장 농원, 녹차 밭을 둘러보거나 정글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타만 네가라 국립공원에서는 숲 도보여행이나 산악 트레킹, 정글 트레킹을 하거나 원시림에 온 몸을 맡길 수 있다. 다문화와 다민족이 어울려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말레이시아에서 원시림과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을 본다는 것은 말레이시아 여행이 가져다주는 기쁨이다. 그 기쁨을 한 달을 조금 넘길 때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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