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막고굴

2013.05.14 07:10

정근태 조회 수:5109

중국 감숙성의 둔황시 남동쪽 20㎞ 지점에 있는 막고굴은
198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불교 유산입니다.
중국 4대 석굴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석굴로 평가받고 있는 석굴입니다.
중국 고대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교통, 지리, 종교, 사회생활, 민족관계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지요.

막고굴 정면입니다.

135.JPG



이 석굴들은 16국 시대 전진시대인 서기 366년 경부터 건립되기 시작하여,
위진남북조, 수, 당, 오대, 서하, 원에 이르기까지,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까지에 걸쳐 만들어졌습니다.
당나라 시기에 건립된 석굴이 이미 천개를 넘어 천불동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입구에는 원나라 양식의 불탑들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습니다.











함께 간 집사람과 아이들,
중국 현지인 가이드가 안내를 해 주는데(왼쪽 두 번째),
한국말을 꽤 잘하는 아가씨였습니다.





막고굴은 1100여 년의 세월 동안 세월과 사람들에 의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1,600여m에 걸쳐는 492개의 석굴과 조각과 벽화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층계로 이어진 석굴들은 각자의 특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막고굴에는 색채가 매우 선명한 벽화들이 있는데,
불상화, 고사화(故事画), 경변화(经变画), 산수화), 동물화, 불교사적화, 신화제재화(神话题材画), 장식도안화(装饰图案画) 등 각종 주제들의 벽화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허락받고 찍은 벽화 하나,



나머지 다른 동굴 내부의 촬영은 허락되지 않아 외부만 촬영한 것이 아쉽습니다.



둔황은 송나라 이후 해상 교통이 발달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한 고대 실크로드가 쇠락하면서 세상에서 잊혀지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청나라 시절인 1900년에, 청리동굴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며 우연히 16굴 북벽을 발견하였고,
그 안에서 진귀한 수많은 경전, 수고(手稿), 문서, 직물과 자수품들이 발견되지요.
사막의 건조한 기후가 이러한 유물들은 완전한 상태로 보전했던 거지요.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으로부터의 탐사단이 이곳을 발굴한다는 명목하에 도굴 수준으로 유물을 훔쳐갔고,
많은 유물들이 이들 국가의 박물관에 소장됩니다.
결국 막고굴의 진귀한 유물은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지요.





특히 막고굴 제 17 동굴에서는 신라의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었습니다.





723년 인도로 떠난 신라 승려 혜초는 727년 둔황을 거쳐 장안으로 돌아와 서역기행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장안에서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완성했지요.
1100여 년이 지난 1908년, 둔황 막고굴 17호굴 장경동(藏經洞)에서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됐습니다.
지금은 파리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130호 동굴은 서기 6세기 경에 축조된 높이 26 m의 미륵대불입니다.



밖에서는 7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큰 미륵대불 하나만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내부를 꽉 채우고 있어 전체를 촬영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130호 동굴 정면에서 인증 샷~





이렇게 큰 불상이 1200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또 1200 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도 엄청난 일입니다.





석굴 맞은편에는 박물관이 서 있습니다.
석굴의 여러 유물들, 혹은 그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가장 힘이 없을 때 빼앗겨버린 소중한 문화재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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